저기 아름다운 우리말의 밭이 있다. 정성 들여 밭갈이를 하면 풍요롭게 열매 맺힐 수 있는 말의 씨앗이 숨겨졌다. 밭은 그러나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채 버려졌다.이응백(78)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는 우리말의 밭으로 가는 안내서이다.
이 책은 이 교수가 1969년부터 지난해까지 신문과 잡지에 수록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학자의 꼼꼼하고 세심한 언어발굴 작업은 두 가지 놀라움을 준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넘치도록 많다는 데 우선 놀라고, 그 많은 말들이 현대인에게 낯설다는 데 또 놀라게 된다.
우리 민족과 언어가 더불어 형성됐을 무렵에는 대부분의 어휘가 순우리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께 한문이 들어오면서 순우리말의 발달은 막혀버렸다.
외국의 문자였던 한문은 세력을 넓혀나가 현재 우리말의 7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한자 발음에 익숙해지면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도 건조하고 빈약해졌다.
굳이 언어학자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가 문화의 빈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의 규범이다.
옛 문헌을 들춰보면 풍성하고 다채로운 우리말이 그득하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시인이었으리라. 이 교수는 '두시언해(杜詩諺解)'를 제안한다.
'두시언해'는 조선 성종 때 당 시인 두보(杜甫)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전 25권)으로, '한국어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이를테면 '身危適他州(신위적타주)'라는 시구는 '몸이 바드라와 다른 가을하로 가노니'로 번역했다. '바드랍다'라는 말은 어감에서 느껴지는 의미와 달리 '위태롭다'는 뜻이다.
'아야라'라는 단어도 생소하지만 부드럽고 경쾌하게 들린다. '강남은 천리 남도소니 산성구 아야라 온층이로다(江南踰千里 山城僅百層)' '겨우'라는 의미로, '애야라' '애여러' 등으로도 쓰였다.
저자는 '아야라'를 현대어에 사용해봤다. '힘들어 걸었어도 아야라 10리 밖에 못왔어라' 문장은 금세 시구로 변했다.
힘들여 고어를 탐구하는 것 외에 우리 속담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야윈 말이 짐 탐한다' '아끼던 것이 찌로 간다' 등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리의 은유에 무릎을 치게 된다.
'딸이 셋이면 문을 열어놓고 잔다'는 말이 있다. 딸들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시집보내느라 셋이나 뒤치다꺼리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진다는 옛말이다. 오죽하면 문을 열어놓고 자도 도둑이 가져갈 게 없을까.
지은이는 요즘 세상에 빗대 봤다. 사람 나름이긴 하지만, 요즘 딸들은 한평생 친정 부모를 생각해 기회 있으면 편히 모시려고 한단다.
그러고 보면 지은이의 표현대로 "딸 가진 부모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잠자리에 들 만하지 아니한가".
이응백 지음ㆍ현대실학사 발행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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