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광주시 예지학원의 화재참사는 불이 났을 당시 바로 대피만 했더라도 아까운 희생을 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불은 16일 밤 10시30분께 학원 건물 5층 옥상에 설치된 가건물 휴게실에서 발생했다.
"연기 냄새가 난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불을 처음 발견한 이 학원 지도강사 복소중(28)씨는 남학생 2~3명과 소화기가 비치된 4층으로 급히 뛰어 내려갔다. 당시만 해도 불길이 세지 않아 쉽게 끌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5층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분.
그러나 그 사이 이미 일부 학생은 소파 등이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에 질식돼 쓰러졌고 교실 한 쪽에서는 "선생님 살려주세요"를 외치는 소리로 아우성이었다.
당시 가건물 안에서는 학생 23명이 복 교사의 지도로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복 강사는 17일 "처음 불을 봤을 때는 혼자서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2분 뒤 양동이에 물을 담아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있었다"며 "그 때 판단을 잘못했던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대피가 늦은 사이 불은 합판으로 마감한 가건물 내부 전체로 급속히 번졌다. 특히 비상구도 없는 데다 발화지점이 출입구 부근이어서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불이 나자 소방차 15대와 소방관 100여명이 동원돼 진화에 나섰으나 출동 자체가 늦은 데다 불길이 워낙 거세 인명피해를 막지 못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학원은 91년 10월 준공 4개월만에 허가를 받아 옥상에 창고를 증축한 뒤 교육청 승인도 받지 않고 교실로 불법 개조해 사용, 스프링클러, 방화문 등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소방본부는 "올 2월 정기점검을 실시했으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화재가 발생한 장소는 건축물 대장상 창고였으며 이곳에는 소화기가 비치돼 문제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이 흡연실내 쓰레기통에서 처음 난 것으로 잠정 추정하고 예지학원 원장 김모(61)씨와 건물주 최모(55)씨를 소환, 안전관리 및 용도변경 경위 등을 조사중이다.
이날 화재로 최나영(19)양 등 학원생 8명이 숨지고 강사 복씨와 학원생 강미영(19)양 등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자중 2명이 의식불명이어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그나마 희생줄인 우정
33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광주시 예지학원 화재참사 피해를 그나마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몸을 던지는 동료애가 발휘됐기 때문이다.
숨진 최나영(20)양은 16일 오후 10시25분께 처음 불을 발견, 동료들에게 알리고 대피시키느라 정작 자신은 대피로를 찾지 못해 유독가스에 질식했다. 동료 이모(20)군은 "나영이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친구들을 잃었을 것"이라며 슬퍼했다.
또 당시 4층에서 자율학습을 하던 학생 20여명이 너나 할 것 없이 5층으로 뛰어 올라가 유독가스에 질식한 동료들을 둘러 업고 내려왔고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까지 했다.
이들은 계단에 두 줄로 늘어서 소방호스를 5층까지 끌어올려 조금이라도 빨리 불길을 잡을 수 있도록 소방관을 도왔다. 4층에서 공부하던 정명현(20)씨 등 재수생 3명은 불이 나자 수건에 물을 적셔 입과 코를 막은 뒤 5층 교실로 뛰어 올라갔다.
정씨 등은 아래층에서 올라온 10여명의 다른 동료들과 정신없이 불길을 헤치며 15∼16명을 업고 건물 밖으로 대피시켰다.
한편 화재로 숨진 인혁진(20)군의 유족은 17일 인군의 시신을 의료기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혀 주위를 숙연케 했다.
16일 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 인치운(50)씨는 "혁진이는 평소 교회에서 주일 봉사활동을 하며 불우한 친구들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며 "혁진이의 뜻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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