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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마라도 - 여긴 길의 끝인가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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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마라도 - 여긴 길의 끝인가 시작인가

입력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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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끝'으로 불린다. 마라도는 그 비장함에 눌려 있었다. 섬의 낭만보다는 의미가 우선이었다. 뒤집어 생각해볼까.이어도를 차고 올라온 대양의 정기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이 땅의 시작'이라고. 섬에서 비롯된 온기가 한반도의 체온이 되고 있다고.

비장함의 걷히면 서서히 속살이 보인다. 국토의 시작 마라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철수와 영이의 소꿉장난처럼 앙증맞고 다정하다. 작은 동화의 나라이다.

마라도는 둘레 4.2㎞, 면적 9만 여 평의 섬. 한반도의 705 개 유인도 중 434 번째로 크다. 현재 31 가구 7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원래 무인도였다.

가장 큰 이유는 파도. 마라도의 인근 해역은 제주에서도 물길이 가장 험한 곳. 바로 옆 섬의 이름이 가파도(加波島)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1883년부터 사람이 살았다. 대정골의 김성오라는 사람이 노름으로 알거지가 되자 친척들이 고을 원님에게 마라도 개경(開耕)을 건의했고 모슬포의 라씨, 김씨, 이씨 등이 함께 나섰다.

마라도 여행은 거친 파도타기로 시작된다. 뱃길은 모두 두 가지. 모슬포항에서 도항선인 삼영호(064-794-3500ㆍ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출발)를 타거나 송악산 선착장에서 유람선인 유양호(794-6661ㆍ오전 9시 30분부터 매일 7차례 왕복)를 이용한다.

배는 선착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파도에 내맡겨진다. 앞뒤로, 좌우로 마구 요동친다.

불과 30 분 거리이지만 정신을 가누기가 쉽지 않다.

종잇장처럼 얇게 바다에 누워 있던 마라도는 다가오면서 색깔로 존재를 알린다. 코발트색 바다와 연초록 초원이 만들어내는 색깔의 변주.

마라도의 첫 감동이다. 자리덕 선착장 양쪽은 거대한 해식동굴의 군락이다. 동굴들이 도열하듯 입을 열고 쪽빛 파도를 마시고 있다.

마라도를 일주하는 데에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오토바이와 경운기를 합친 섬일주 택시(?)와 자전거가 있지만 걷는 것이 제격이다.

바다에 둘러 싸인 푸른 초원을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대부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아담한 교사 앞으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축구 골대를 세워놓았다. 총 학생 수가 2 명인 관계로 이 축구장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가끔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오면 편을 갈라 공을 찬다. 축구장 주인도 오랜만에 몸을 푼다.

서쪽 해안 끄트머리에 아담한 유럽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간판을 먼저 걸었는데 '초콜릿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다. 최남단에 웬 초콜릿 박물관? 이색적이기도 하지만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박물관을 돌아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최남단이다. 한자로 '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다. 그 앞에 장군바위가 있다. 마라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믿는다.

장군바위에 오르면 바다가 성을 낸다고 믿어왔다. 가끔 영문 모르는 나그네가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주민의 호된 꾸지람이 뒤통수를 때린다.

최남단 옆 언덕에 마라도 등대가 서 있다. 남지나해로 나가는 모든 배에 꼭 필요한 존재이다.

세계 해도에 설사 제주도가 빠졌더라도 마라도 등대는 반드시 표기돼 있다. 1915년 3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등대 앞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일명 자살바위로 불린다. 죽을 마음이 없더라도 밑을 쳐다보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실족사하기도 한다.

바위 위에 백년에 한번씩 노란 꽃을 피운다는 백년초가 무리지어 있다.

등대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넓은 초원이다. 마라도 여행의 종착지이다. 옛 무덤이 있다. 더 이상 새 무덤은 생기지 않는다.

노인이 세상을 뜨면 제주나 육지의 자손이 모셔가기 때문이다. 무덤은 돌담 안에 누워있다. 드넓은 초원에 드러누운 야트막한 무덤이 망망대해에 엎드려 있는 마라도를 닮았다. 무거운 의미로 벽을 둘렀던 것까지.

■마라도의 명물 '사랑의 짜장면'

마라도의 으뜸 명물은 짜장면. 표기법상으로는 자장면이 옳지만 '마라도 짜장면'으로 특허를 받았다. 마라도 짜장면집(064-792-8506)이 생긴 것은 5년 전.

주인 방다락(55)씨가 개그맨 김국진과 이창명이 출연하는 통신업체의 CF를 보고 마라도의 명물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마라도 짜장면을 탄생시켰다.

소라 조개 오징어 등 15가지 이상의 해산물과 감자 양파 당근 콩 등 30여 가지의 야채가 들어간다. 장을 만드는 육수는 생선뼈와 해초를 우려서 낸다. 한마디로 맛있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한 그릇에 5,000원. 비싸다고 하자 "고급 중식당의 삼선 자장면과 비교하라"고 한다. 단체 관광객이 몰리면 하루에 500~600 그릇이 팔린다.

성공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짜장면 하나로 떼부자가 됐다고 배 아플 필요는 없다.

번 돈은 불우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기 대문이다. 깊은 사연이 있다.

주인 방다락씨는 실은 마라도교회의 목사. 부산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20년 전에 섬에 왔다.

목회자인지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짜장면집의 대외적인 대표는 둘째 아들이 맡고 있다. 섬에서 방목사의 중요한 임무는 자살방지역.

이 땅의 끝에서 생을 끝내려는 사람들이 가끔 들어온다. 방 목사는 나그네의 표정만 봐도 그 의중을 알 정도.

20년간 돌려세운 사람만 870여 명이다. 그러나 방목사의 감시망을 빠져 나가 안타까운 영혼이 된 사람들도 있다. 방목사는 그 영혼을 거두거나 남아있는 가족을 돌본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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