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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문 앞의 적(Enemy At The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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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문 앞의 적(Enemy At The Gate)

입력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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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독일과 맹렬히 싸우던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에게는 사수해야 할 보루였으며, 독일에게는 소련 공략의 최대 목표였다. 전세는 소련군에게 불리한 편이었다.소년 티를 갓 벗은 최고의 저격수 바실리(주드 로).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는 포탄 소리가 날 때 마다 한 발씩 한 발씩 적의 머리에 구멍을 내는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국민과 군의 사기 진작에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문 앞의 적(Enemy At The Gate)'은 만들어진 영웅과 그의 영웅의 적과의 갈등, 영웅의 내적인 고뇌 등이 웅장한 스케일의 화면에 담겼다.

바실리의 적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독일 최고의 저격수 코니그 소령(에드 해리스)만이 아니다.

"내가 그를 찾는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찾도록 하겠다"는 이 백전노장은 실전 경험이 부족한 바실리에게는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 아닌 자기'를 만든 다닐로프, 그리고 과도하게 포장된 자신이다.

미모의 여병사 타냐(레이첼 와이즈)를 짝사랑하게 된 다닐로프는 "바실리는 내가 만들어낸 영웅에 불과하다"며 바실리와 타냐의 사랑을 질투하며 마침내 적에게 정보를 흘리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2차 대전이 배경이 됐을 뿐 코니그와 바실리의 대결은 액션 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 하면서 영화도 그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만들어진 영웅 바실리, 영웅을 만들었지만 언제나 조연에 불과한 다닐로프의 복잡한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적의 수중에 함락될 도시에 사는 인간의 불안과 비극적 면모는 오히려 타냐를 돌보는 필로프 부인의 아들 샤샤(가브리엘 톰슨)에게서 극대화한다.

구두닦이 소년 샤샤는 영웅 바실리와의 만남에 흥분되어 코니그에게 그 사실을 발설한다.

그러나 코니그가 자신을 첩자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초콜릿 때문에, 그리고 독일군이 이길 것이라 믿기 때문에 바실리에 대한 정보를 아무런 가책 없이 팔아 넘긴다.

'생존'외에는 관심이 없는 소년이 바실리가 죽었다는 사실에 무표정한 눈물을 흘리는 대목은 전쟁의 광기가 가져온 비극 자체다.

'불을 찾아서' '장미의 이름'으로 이름을 알린 장 자크 아노는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내면의 탐구 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하는 감독으로 보인다.

'씬 레드 라인'이나 '글래디에이터'가 영화 초반에 보여 주었던 영화사에 남을 액션 장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장의 가운데에 선 듯한 느낌이 충분히 들 만큼 독특하다. 총알은 병사들을 무참하게 치고 지나가고 단발마의 비명도 없이 병사들은 스러진다.

2차 대전 시대를 살았던 인간에 대한 조망은 부족한, 그러나 스케일 큰 전쟁 영화로는 손색이 없는, 이중적 영화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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