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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 제주 영어공용어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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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 제주 영어공용어화 추진

입력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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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면서 영어를 제주의 제2공용어로 하려는 정부ㆍ여당의 움직임이 논란을 낳고 있다.찬성론자들은 국제자유도시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영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데다 사대주의 시비를 야기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제주 영어공용어화 방침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7월중 최종 입장을 발표키로 했다.

[찬성] 국제도시 발전위해 필수 日서도 영어 공용화 제기…

작년 일본의 총리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구상'이 제출한 보고서는 일본이 21세기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용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정부 여당도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타당성조사 계획서이므로 공론화하긴 아직 이르다. 그러나 바람직한 대안이다.

국제자유도시의 주요 기능은 자유무역과 국제금융센터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류 교통 금융 통신 등의 제반 인프라가 구비돼야한다.

하지만 언어적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언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싱가포르와 홍콩은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해 올 수 있었다.

국제금융의 대가인 미국 미시간대학의 군퍼 두페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행한 연설중 서울을 국제금융 시장으로 육성하는데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한마디로 "영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경제의 중추인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에서도 외국은행 지점장과의 대담이 영어로 이뤄지고 있다.

17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인의 30% 이상이 영어를 비롯한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제주도라는 한정된 지역이지만 외국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부감이 많을 것이다.

몇 백년동안 써온 한자까지도 버리는 문화적 국수성(國粹性)을 갖고 있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제에 외국어 사용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어 조기교육 도입이 거론되고, 영어만을 쓰는 국제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글로벌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정보통신 혁명으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이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다우존스 주가 변동에 따라 한국 증시가 움직이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오늘 패션 상품이 일주일 내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만들어진다.

글로벌화한 지구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같은 촌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의 공용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자유도시를 만들면서 '한라' 자유도시의 사고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날 준비가 되어야 한다.

호텔에서 종업원들이 영어를 쓴다고 이상할 것이 없듯이 영어를 생활화한다고 국민의 주체성이 침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드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전에 지나지 않는 계획일지라도 꿈이 있으면 실현된다. 올림픽의 꿈이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키우게 만들었고, 아시아 항공교통의 '허브(중심지)'의 꿈이 인천국제공항을 건축하게 만들었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는 꿈도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제주도의 국제화는 또 다른 비전, 한국인들의 사고의 국제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윤대·고려대 교수 경영학

[반대] 긴시간 요하는 국제도시 소모적 공영어 논쟁보다…

정부 여당이 제주도에서 영어를 제2공용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대로 시행된다면 제주도에서 영어가 한국어와 함께 법률적으로 공용어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해묵은 영어 공용어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영어 공용어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 불가결하므로 이를 위해 영어 공용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주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정체성 문제 등을 거론한다. 그동안 영어 공용어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서 논쟁은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영어 공용어화는 그 사회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영어 능력을 확보한 다음에나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영어 공용어화로 제주도의 영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그리고 현 상태에서는 아무리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화하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영어 능력 때문에 할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을 갖고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자유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영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그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물론 영어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이 없다는 데 우리 사회의 고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말이 전도된 정책을 가지고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드는 일은 긴 시간을 요한다. 여기에는 영어 문제말고도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조건들을 감안해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안에서 영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을 펴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실질적인 영어 교육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어 수업에 '말'이 동원되어야 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시켜야 된다. 이를 위해 제주도의 영어교사 양성방법을 획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제주도 전체의 영어 공용어화를 운위하기보다 최소한 제주도 소재 대학의 영어 관련 학과에서 영어를 상용어로 지정해 충분한 영어 능력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국의 공무원 중 영어 능력자를 제주도로 파견해 공공부문 영어 서비스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또 전국 혹은 전세계의 영어 능력자를 제주도로 유인하는 현실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초일류 통ㆍ번역 전문가를 양성해내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은 물론 군복무 면제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고도, 따라서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불필요한 논쟁은 피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한학성·경희대 교수 영어학

■영어 공용어화論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려는 정부ㆍ여당의 움직임과 관련,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영어공용어화 문제이다. 비록 제주지역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이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6월 소설가 복거일씨가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을 내면서 공용어화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복씨는 장차 '지구 제국'에서 중심부로 진출하려면 영어를 모국어로 삼아야 하며, 그 전 단계로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영어공용어화가 문화 사대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2차 논쟁은 99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자유기업센터가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영어 공용어화 문제 토론회가 계기가 됐다.

작년 1월에는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개인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 제출한 보고서에 영어를 일본의 제2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이 보도되면서 국내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어 올 3월 일본 아사히 신문 출신의 저널리스트 후나바시 오이치시가 쓴 '나는 왜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잠시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이 경제대국이면서도 영어구사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래에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복거일씨와의 인터뷰까지 실었다. 이번에 영어공용화 논란이 본격화하면 네번째가 되는 셈.

영어 공용어화론은 우리나라와 일본 뿐 아니라 태국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제기됐다.

태국의 경우 지난해 정부 및 민간 전문가들이 세미나 등의 자리에서 "세계화 시대에 태국어만으로는 불충분하니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사용하자"고 잇따라 제안했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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