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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여성생활수기 공모 수상자 인터뷰 - 최우수상 오옥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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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여성생활수기 공모 수상자 인터뷰 - 최우수상 오옥자씨

입력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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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 2동에 자리잡은 11평짜리 가게,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현주 미용실' 이었다.여성생활수기 최우수작 당선자 오옥자(56)씨는 31년째 '현주미용실'이란 간판을 걸고 운영하고 있다.

도봉구 삼양동 네 평 가게에서 시작해, 지난해 5월 여기에 자리잡을 때까지. 오씨는 "워낙 팔자가 드세 이름을 바꾸라고 하기에 1970년 처음으로 내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현주라는 가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미용실에서는 사람들과 살아 온 역정을 많이 이야기하게 되죠. 제 얘기를 들은 단골 한 분이 40년 가까이 미용사라는 직업을 지켜오면서 역경을 헤쳐온 점이 여느 한많은 삶과는 차별적이라고 말하더군요." 오씨는 지난 날을 회고하는 보름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마음 속 깊이 있던 응어리를 풀어내서 후련하다"고 털어놓았다.

쉰 여섯. 일을 그만둘 때도 됐다 싶어 언제까지 미용실을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앞으로 적어도 십년은 더 할 수 있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용기술을 익히기 시작해서, 이 기술로 집도 장만하고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친정식구까지 부양했다"고 말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요일도 쉬지 않았다. 40년 간 사용해 온 가위는 닳을대로 닳아서 길이가 약 3㎝ 줄어들었다.

오랜 단골들은 이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돼서 찾아와 "지금도 그 신랑하고 살어?"라고 묻곤 한다.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적고 바람기 많은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는 "이혼을 생각한 적도 많고 자살도 수십 차례 시도했지만, 커가는 두 아들과 내 직업이 있었기에 인내하며 가정을 지켜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살을 시도했던 때를 떠올리면서는 눈물이 글썽해 말을 잇지 못했다. 큰 아들 김 섭(31)씨의 결혼식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을 정도로 오씨에게 있어서 두 아들은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남편이 사기죄로 고소당했을 때 발벗고 탄원에 나선 이유도 오직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서"였다. 그는 "큰 아들은 경찰로, 작은 아들은 회사원으로 각각 사회에서 자리잡고 가정도 꾸려서 살아나가는 것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미용사로서 살고 싶다"는 오씨. 그래서 미용협회에서 1년에 한번씩 여는 세미나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드라이기나 바리깡 같은 새로운 기구의 사용법, 브리지 등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놓칠 순 없죠." 오씨는 "가족과 나를 위해서는 할 만큼 했다"며 "이제는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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