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다래가요 편지 썼어요." 늘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는 '교장반'에 3학년 여학생 두 명이 얼굴을 내밀더니 종종걸음으로 편지 한 장을 수줍은 듯 내려 놓았다.얼마 후 2학년2반 한 학부모가 자신의 집에라도 온 듯 성큼 들어섰다. "오늘 우리 반 아이 생일인데, 생일떡 좀 드세요."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동 가양초등학교. 막 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교장선생님께 몰려든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교장실은 없다. 대신 본관 1층 한켠에 어린이 눈높이의 책상과 의자가 가득찬 이름도 없는 방에 교장 강태휘(57)씨가 '전교생의 담임'으로 근무 중이다.
'교장반'. 교장이 어린이들에게 뛰어들어 직접 지도ㆍ호흡하며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찾아내 학교운영에 현장감있게 반영하는 '이색적인' 시도가 일그러진 우리 교육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고 있다.
강 교장이 이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9월. 며칠이나 지났을까 인근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중인 아이가 있으니 교장선생님께서 데려가시죠." 부모가 노점상을 하는 집 아이였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용돈도 없어서 옆 집에서 잠깐 빌렸어요." 아이는 혼쭐이 날까 잔뜩 움추린 모습이었지만 강 교장은 그저 꼭 안아주었다.
"얼마전까지 파출소는 가장 통화를 많이 하는 곳 중 하나였어요. 빈집 털기, 돈 빼앗기, 만화가게 무상출입, 밤늦게 배회하기 등 갖가지 '작은 비행'으로 파출소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다반사였죠." 학교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가양기상대'라고 불리는 백엽상이 부서지는가 하면, 학교 유리창도 여러 차례 파손됐다.
"지역특성 상 맞벌이를 하거나 결손 가정 출신인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내가 외면하면 누가 돌보겠느냐는 생각에 신경을 쓸 뿐이죠." 강교장의 하루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찾도록 교장실 명패도 떼고, "너희는 교장반 학생이야"라며 용기도 불어넣었다.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인터폰으로도 자유롭게 전화를 하도록 했다.
생활기록부를 뒤적여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겐 '교장반'에서 깜짝 생일잔치도 10여차례 열었다. '교장반'은 어느새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굳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점차 펴져갔고, 말썽꾼으로 소문났던 아이들도 한학년씩 올라가고 무사히 중학교에 입학했다.
강 교장의 또 다른 어린이 친구 사귀기 비법은 e_메일. 지난해 9월부터 어린이들과 주고 받은 e_메일은 100쪽 짜리 작은 책을 하나 엮고도 수천통이 남을 정도다. 강 교장은 "어린이들이 메일을 통해 힙합바지 사는 문제와 여자친구에 대해 상담해 올 때면 신까지 난다"고 귀띔했다.
"교장선생님은 친구 같아요. 말썽피우던 친구들도 이제는 즐겁게 학교 다녀요. 교장선생님 만세." 교장선생님을 얼싸 안으면 '만세'를 외치는 5학년 김현진(11)군의 표정에는 희망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