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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여성생활수기 공모 우수작 - 하기선(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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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여성생활수기 공모 우수작 - 하기선(요약)

입력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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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여자로하기선(河基善ㆍ22ㆍ서울 금천구 독산4동 1025의 8)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매체나 우리 사회가 아무리 '남녀평등'이라는 문구를 앞세워도 아직도 사회에서 여성의 실상은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사회 속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하는 도우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처음 도우미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보다는 돈에 더 끌렸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평생 내 일이다 생각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도우미로서 일을 대충하지는 않았다.

이왕 하는 일,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뿐 아니라 도우미의 세계는 경쟁이 치열하고 냉정했다. 난 여기서 버텨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따지고 보면 외모에 노력을 더 많이 퍼부은 꼴이지만.

일을 하려면 면접은 3차까지가 기본이었다. 처음엔 미리 준비한 제2외국어나 내레이션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면접관이라는 사람들이 오로지 외모와 몸매를 더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미인선발대회처럼 외모를 중시하며 면접을 치르던 그들에 대한 반발심도 커져갔다.

한번쯤은 꼭 그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미숙함과 전근대적 가치관을 자각시켜 주고 싶었다. 그 다음 해, 나는 똑같은 면접관 앞에서 면접을 보았다.

그들은 58Kg일 때는 나를 버렸지만 48Kg일 때는 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단정한 정장 차림보다는 짧은 미니스커트의 나를 합격자 명단에 넣어주었다.

최종면접을 통과하고 모터쇼를 앞두고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였다. 내가, 아니 다른 선배들이 지금까지 당해 온 성차별적인 일에 대한 생각을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한심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봤고,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식으로 나를 비웃고 몰아냈다. '일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이 일을 하지 못해서 줄서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나는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 회사를 대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다른 도우미들도 동참했고, 어떤 도우미는 그 회사 면접관에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는 공식사과를 요청하고 만약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모터쇼 행사를 펑크내겠다고 협박도 했다. 그러나 회사측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끝내 우리가 행사를 펑크내는 사태까지 이르게 됐다. 그제서야 회사측에서도 정중히 사과를 해왔다. 엎드려 절 받는 꼴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성취감에 충분히 도취될 수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외모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성은 아름다워져야 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다 아름다워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살아가는 목적이 될 수도 있을까. 여성들도 남자 못지않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어쩌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먼저 자각해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해 여름, 신촌에서 로드행사를 할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이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덫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음흉한 눈빛으로 자꾸 야한 농담을 걸어왔다.

얼마면 자기랑 자줄 수 있냐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나를 길거리 창녀인 양 취급했다. 서비스 정신이 얼마나 투철한지 테스트받는 것으로 생각하려 해도, 도가 지나쳤다.

급기야 그는 나를 안기 위해 쓰러지면서 행사매대를 엎어 놓는 등 행패를 부렸다. 그 남자가 다시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그의 뺨을 한 대 올려쳤다.

"만만하게 보지 말란 말이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아무도 내 편에 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저런 꼴 당하지 않으려면 행동가짐을 잘 해야지"라는 말까지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그 남자는 "고객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데가 어디 있냐"면서 담당자를 찾았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 온 담당자는 나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고객은 고객 아니냐"면서 "그냥 한 번 봐 준다고 생각하고 모른 체 넘어가자"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성추행하려고 했다"고 말했지만 담당자는 "하려고 했을 뿐이지 한 건 아니지 않냐"고 했다. 그 말에 난 대들 듯이 물었다.

"여자친구나 여동생이 이런 일을 당해도 이러실 수 있나요?" 대꾸가 없었다. 끝내 나와 그 남자는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경찰들마저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내 옷차림을 두고 속닥거렸다.

하지만 난 일을 하기 위해 이런 옷을 입었을 뿐 누구를 유혹하기 위해 입은 게 아니었으므로 당당하고 떳떳했다.

다음 날 나는 그 행사를 그만 두어야 했고, 그 동안 일한 것에 대한 수당도 받지 못했다. 다른 업체도 날 고용해주지 않았다.

다른 도우미들도 당분간 조용히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다. 참을 수 없어서 나는 그 남자와 날 고용했던 회사 앞으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그 남자는 폭행죄로, 회사는 명예훼손으로 맞소송을 걸어왔다. 스물 두 살이라는 나이에 법정에서 싸우는 게 힘들었지만, 도중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끝까지 자기 잘못을 부인했지만 결론은 나의 승리였다. 신촌에서 같이 로드 행사를 하던 선배가 증언을 해 준 덕분에 승소할 수 있었다.

그 남자를 때린 건 인정되지만 그의 행동으로 보아 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었고 그 회사는 공식 사과와 함께 받지 못한 수당에 10배를 더해 지급할 것을 법원에서 판결내렸다.

나는 회사로부터 밀린 수당과 위로금을 받았고, 그 남자한테서는 정중히 사과를 받았다.

얼마든지 성추행범으로 그 남자를 구속할 수도 있었지만 두 딸을 둔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차마 그렇게 모질게는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느끼고 반성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는 내용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소송을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주위사람들이 말렸다. "그냥 참고 살지, 뭐 그리 유난을 떨 필요가 있냐"고,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거냐"고, "시간 고생 몸 고생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 자신을 믿었다.

지금도 그때의 행동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난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아직은 부족해도 언젠가는 남성우월주의가 아니라 여성우월주의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사회를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 여성들이 직접 해야 할 과제이다. 그 과제의 답을 알고 있는 것도, 그 과제를 풀 수 있는 것도 바로 여성이다.

난 지금의 내 자신을 사랑한다. 여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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