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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趙芝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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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趙芝薰

입력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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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17일 시인 조지훈(趙芝薰)이 별세했다. 향년 48세. 본명이 동탁(東卓)인 지훈은 경북 영양 출생이다. 혜화 전문을 졸업하고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文章)'지에 '고풍의상(古風衣裳)''승무(僧舞)'등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해방 뒤인 46년에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낸 뒤로 이 세 시인은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훈의 초기 시들은 고풍스러운 소재를 사용해 민족 정서를 섬세하고 우아하게 형상화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승무'는 지훈 시의 그런 특질들을 표본적으로 보여준다.

지훈은 무엇보다도 시인이었지만, 지사(志士)나 학자나 논객의 이미지도 짙었다. 여느 시인들이 흔히 지닌 여림이나 유약함의 분위기와는 거의 대척점에 그가 서 있다. 안동 문화권의 가장 긍정적인 이미지 곧 결기에 가득찬 선비의 이미지가 그의 이미지다.

실상 지훈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용기나 오기를 알려주는 일화들이 늘 따라다녔고, 그 일화들이 지훈이라는 이름을 감싸는 아우라의 한 요소이기도 했다.

그 일화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노기남 주교와 관련이 있다. 지훈이 친구들 몇과 함께 서울의 명동에서 노 주교를 만났을 때의 얘기다. 노 주교가 지식인들은 의지가 약하게 마련이라고 하자 지훈이 거기에 대해 반론을 폈다.

노 주교가 끝내 믿을 기색을 보이지 않자, 지훈은 성냥개비 대여섯 개에 불을 붙여 자신의 손등에 올려놓았다.

성냥개비와 함께 그의 손등도 지글지글 타들어갔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돌리는데도 지훈은 계속 버티다가 불이 다 탄 다음에야 스스로 재를 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용기라면 용기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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