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출산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모성보호법안이 표류하고 있다. 여성계, 노조, 재계 및 정당, 정부 등 여러 부문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이 문제의 맥을 찾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일단 비용이라는 단기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장기적 국가경쟁력의 비전이 흐려지고 있는 점과, 출산에 초점이 맞추어진 모성보호 문제에 가족간호휴가제, 시간외근로와 야업금지 및 기존의 생리휴가 등 전체 여성보호 문제가 겹쳐져 혼선을 빚고 있는 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갈등의 주 요인이 비용문제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산휴가 및 육아 휴직에 새롭게 추가되는 직접 부담은 대체로 고용보험과 일반회계에서 지출되며, 휴직으로 인한 공백 때문에 생기는 간접 부담은 재계로 돌아갈 것이다.
재계가 여성 고용을 기피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이나, 정계에서 당장의 국가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60년대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시작할 때 여성이 저임금으로 온갖 궂은 일을 떠맡았던 것을 우리 국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차별 해소에 대한 기업의 반발도 기억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실시 후 여성고용이 줄어들었다며, 모성보호 후 이루어질 역공을 예고하는 재계의 말이 무섭기도 하다. 여성은 희생해야만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니까.
그런데 그 반작용이 우리사회의 더 깊은 지반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체감되지 않는 모양이다. 다름아닌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이다. 1985년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이(합계출산율 1.7) 작년에는 1.4까지 하락했다.
이것은 프랑스, 노르웨이 등 출산 장려에 고심하는 서구 나라들의 출산율보다도 낮은 수치다. 한마디로, 이미 여자도 벌어야 살 수 있게 된 우리 사회구조 속에서, 아이를 여럿 낳아 기르며 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생산인구의 감소가 초래할 위기에 대하여, 우리와 비슷한 출산율을 보이는 일본은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매우 심각하게 대처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사회가 불감에 가까운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다. 고도지식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여성의 고급 두되 방치로 국가경쟁력이 심각하게 저하될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대책도 심각하다.
여성의 학력과 취업율이 반비례하는 현상에 대해 여성계에서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 국가차원에서의 개선책 모색의 기미가 없다.
이미 유수 대학에 여학생이 대거 입학하고 있고, 기업에서 입사 시험시 다수의 고득점자 여성이 면접에서 탈락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우수한 여성 두뇌가 모성보호의 부담을 지기 싫어하는 사회에서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자, 단기적 비용문제와 장기적 국가경쟁력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명약관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물꼬를 틀 것인지 지혜를 모으고 한발씩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출산과 기타 여성보호의 혼선 문제. 재계는 개정법안 중 출산휴가 90일만을 인정하고 그것도 기존의 생리휴가와 맞바꾸는 조건을 제시하고는 한발도 물러서고 있지 않다.
이번 개정안은 출산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전체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생리휴가문제는 일단 접어두는 것이, 대화를 위해 눈을 맞추는 기본자세이다.
여성계, 노조도 마찬가지다. 이번 개정안을 출산에 관련된 모성보호에만 국한시키고, 시간외근로와 야업금지 삭제 및 가족간호제 문제에 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옳았다.
이런 혼란을 정리하면서 지난 해 이 법안이 청원될 때 이미 확보된 것 더해 조금 더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문제해결의 고리를 풀기 시작할 것을, 우리 정부에게 기대한다.
정진성·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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