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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우리 자신의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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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우리 자신의 역사 왜곡

입력
200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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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부음 난에서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경우가 아직도 더러 남아있다. 그 때마다 헤아리는 것은 일본의 강점에서 우리가 해방된 지 올해로 몇 핸가 하는 ‘숫자’가 첫째이고, 이제 몇 분이나 더 생존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둘째다.확실히, 56년은 긴 세월이다. 일제의 압제에 맞서 민족 정기(正氣 또는 精氣) 편에서 행동했던 그 분들은 거의 사라져 갔다.

놀라는 것은 반세기 넘게 시간의 격절(隔絶)을 두고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증거한 생생한 교훈이 그것이다.

경제 침탈을 위해 토지 측량하고 철도 부설한 것을 두고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저들의 논리다.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수행했다던가, ‘합방’을 바라는 한국 내부의 움직임에 저들이 호응한 듯이 말하는 것도 물론 언어도단의 낯뜨거운 왜곡이다.

주목할 일은 이런 왜곡 뒤에 숨은 군국주의 사고의 부활이다. ‘일부 국우’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생각, 정부의 태도가 그리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국어를 말살하고 창씨개명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민족청소’에 나섰던 일본 군국주의의 죄과를 후손들에게 영원히 감추고 싶다는 것이 다름아닌 오늘의 ‘일본의 생각’이 아닌가!

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최근 독일의 젊은 세대가 나치 시대에 있었던 어두운 역사에 대해 더이상 죄의식이나 책임감을 갖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대한 조사결과를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국가 차원에서 ‘사죄’도 ‘참회’도 ‘배상’도 무수히 견디어 왔으나, 국민들 가운데서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일종의 ‘싫증’이 광범하게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경과, 세대의 차이가 주요 원인일 터이다.

그러나 독일이 일본과 다른것은 국가가 견지하는 확고한 역사의식과 원칙이다.

지난 6일 벨기에 소도시 디낭에서 열린 87년전 1차대전 때의 학살사건에 대한 ‘사죄’ 행사는 독일의 이웃나라에 대한 화해노력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주민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 디낭은 독일군에게 주민 674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어 독일과 독일인을 이제까지 ‘원수’로 여겨왔다.

독일은 옛 죄과를 씻는데 진정을 다했고, 그들의 손을 잡는데 어렵게 성공한 것이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세대를 넘어서, 그리고 한 세기를 넘어서 이룬 ‘화해’다.

반성할 줄도, 진심을 담아 손 내밀줄도 모르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우리 또한 반성하거나 진심으로 역사에 화해를 청할 일이 없는지, 우리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또다른 역사왜곡은 없는지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지금 엄청난 역사 왜곡에 자승자박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2001년의 5월 16일은 5.16이 40주년 되는 날이다. 구 일본황군 장교출신의 박정희 소장과 일단의 젊은 장교들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기념일이 5.16이다.

그로부터 1979년 현직 대통령 박정희가 그의 충복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기 까지, 나라의 역사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유신 독재와 경제제일주의의 구호 아래 역진(逆進)을 거듭했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쿠데타 죄업(罪業)이 구제될 수 있다는 논리는 우리 내부의 역사왜곡의 원점이다.

박정희의 리더십이 70년대의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거나 그의 ‘조국근대화’ 열정이 있었기에 남과 북의 기아탈출 경쟁에서 남쪽이 그나마 앞설 수 있었다고 하는 ‘논리’는 마치 일본의 강제침탈이 있었기에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일본 군국사관을 꼭 빼닮았다.

박정희 소장을 불러내고 미화하고 기념관까지 국비로 ‘세우려는’ 우리 내부의 역사왜곡이 지금 정말로 더 부끄럽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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