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와 서석면 수하리에 성역화 사업이 한창인 현장을 다녀왔다. 이 사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핵심적 역할을 한 향토사학자 남강(南江) 김창묵 선생은 현장 작업을 하시다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선생은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고향을 가꾸기 위해 80의 노령에도 구슬땀을 흘리시며 훗날 역사 교육 현장의 마무리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은 내 고향으로, 동학혁명과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동학혁명 당시 수천명의 혁명군이 항쟁을 일으켜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과 싸워 800여명의 사망자를 냈고, 3ㆍ1운동 당시에는 3,000명의 지사들이 독립을 외쳤던 보국안민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전체 공정의 60%가 진척된 성역화 작업 현장에는 생명력이 치솟는 화창한 봄 향기가 온 누리를 감싸는 가운데 마무리 공정이 힘차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린시설 고향의 먹거리였던 취나물쌈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여러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남강 선생은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제의 총탄에 목숨을 잃고도 현재 묘소조차 찾아볼 수 없는 장두(掌頭) 김덕원 의사의 호국정신을 특히 강조했다.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양천봉과 청로봉, 척야산, 망국의 한을 품고 다락방에서 은신생활을 할 때 인적을 피해 달빛을 벗삼아 홀로 거닐던 덕원산길 등 김덕원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문득 나의 왜소한 삶을 반성하게 됐다.
또 동학운동과 항일운동의 근거지로 삼던 마방터, 1919년 4월 3일 내촌면, 서석면, 화촌면, 기린면, 내면 등 5개면 3,000여 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구국투쟁을 하다가 잔악한 일제에 의해 살해된 팔열사와 지사들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항일 사적지인 기미만세공원 등도 가보았다..
우리 사회도 의와 원칙이 소중한 삶의 가치로 평가받는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의미있는 현장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창의적인 열린 사고의 교육이 절대적이다.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을 적극 발굴해 표상으로 삼아야할 이유가 아닐까.
안병석·㈜ 두산에코비즈넷 상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