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 우파 연합이 승리하자 유럽연합(EU) 각국의 좌파 정부들이 견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그 동안 중도 좌파가 지배하던 EU에 '우파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각국 좌파정부들은 EU 확대와 범유럽 정부 구성 등 앞으로 EU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14일 "이탈리아가 유럽결속 정신 아래 EU에 대한 전통적인 우호 입장을 지속해 나가리라고 기대한다"며 이탈리아의 '이탈'을 은근히 경계했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부 장관도 "유럽은 새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경계할 것"이라고 논평했다.그의 발언은 베를루스코니의 '자유의 집 동맹'에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국민동맹과 극우 정당인 북부연맹이 포함된 데 대한 우려의 표시이다.
강한 민족주의 색채를 나타내고 있는 북부연맹은 유로화의 확대에 반대하고 외국인 배척 정책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EU의 주축국이며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EU 통합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슈뢰더 독일 총리가 제안한 유럽정부 구성에는 반대한다"고 말해 중도 좌파 정권 주도로 비교적 원만했던 EU의 정책 결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거부되더라도 현재 유럽의회에서 중도 우파가 다수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당인 자유당의 외르크 하이더 전 당수도 "이탈리아는 변화가 필요했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환영했다. 중도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스페인의 호세 피케 외무부 장관도 "베를루스코니의 뚜렷한 승리를 축하한다"며 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극우 정당들이 포함됐음에도 불구, 베를루스코니의 연립 정부가 중도 성향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처럼 EU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개별 국가의 자치권과 다양성을 더 인정해야 한다는 중간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 북부동맹이 1994년 선거의 절반 수준인 4% 정도의 득표율로 비례 대표 의석 확보에 턱걸이 한 것 등을 볼 때 이번 선거를 '우파 득세'로 정리하긴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베를루스코니, 유럽판 부시?
'이탈리아 주식회사의 설립'
차기 총리에 취임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진이탈리아당 당수가 14일 총선 승리를 선언하며 밝힌 국정운영 지표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주식회사를 강조함으로써 보수우파의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이 '강한 이탈리아'라는 기조로 선거전을 치른 베를루스코니는 경제, 외교, 환경 등 대부분 분야에서 '강한 미국'을 내걸고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노선을 추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제정책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현재의 43%에서 33%로 낮추어 경제를 활성화하며, 연금수령 연령을 65세로 올리겠다는 게 골자. 부시 집권후 미국에서처럼 당장 정부부채 상환론자들과 노동조합의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부익부 빈익빈'정책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사회정책도 극우인 북부동맹의 주장을 받아들여 범죄증가율 등을 들어 불법이민 단속을 강화할 뜻을 시사하고 있다. 부총리직에 움베르토 보시 북부동맹 당수를 내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부시의 교토(京都)의정서 탈퇴마저 옹호하고 나섰다.
외교정책은 한발 더 미국에 다가서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라며 유럽 국가와 달리 부시의 미사일방어(MD)체제를 적극 찬성했다.
유럽연합에서는 이질적인 '축소판 부시'의 등장에 대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그가 이끄는 '자유의 집 동맹'이 상원에서 총 315석 중 177석, 하원에서 630석중 330~365석을 차지한 상태여서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