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16일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제1차 중동 전쟁(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졌다. 영국군의 철수와 함께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지 이틀 뒤였다.초기에는 아랍측이 우세했으나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의 역공으로 아랍측은 패퇴를 거듭했다. 국제연합의 조정으로 이듬해인 49년 2월에 휴전이 성립됐지만, 이 전쟁의 결과로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겼고, 아랍 게릴라가 조직됐다.
이 전쟁은 기나긴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서막일 뿐이었다.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 직후 이스라엘과 영국ㆍ프랑스군의 이집트 공격으로 시작된 1956년의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 아랍 게릴라가 둥지로 삼던 시리아로 이스라엘이 쳐들어가면서 시작된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나세르의 후임자 사다트가 이끄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며 시작된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등 뒤이은 중동 전쟁들은 유대교ㆍ기독교ㆍ이슬람교가 동시에 성지(聖地)로 삼고 있는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임을 보여주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에는 역사적 배경과 국제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2천년 전에 떠나온 땅을 제 것이라고 우기며 그곳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이 일차적으로 비판 받아야겠지만,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모순된 약속을 한 영국의 책임도 크다.
영국은 제1차세계 대전 기간 중에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한편 오스만 투르크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했고,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맥마흔 선언을 통해 그리고 유대인에 대해서는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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