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빚고 있는 재벌규제완화와 관련, 정부와 재계의 입장차 만큼이나 전문가들의 견해와 처방도 상이했다.정ㆍ재계간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핵심 규제사안중 '부채비율 200%'는 업종ㆍ기업별 탄력적 적용이 필요하다는데 견해가 일치됐다.
출자총액제한과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은 다소 시각차에도 불구, 역시 어떤 형태로든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 등 소액주주 권한강화 규제들과 동일계열 여신한도제 같은 건전성 규제부문은 재계의 완화ㆍ연기요구와는 달리 다소 보완장치를 마련하더라도 시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 부채비율 200% 적용
기업의 재무구조개선 필요성은 공감하나 획일적 규제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초기엔 의미가 있었지만, 기업 부채비율이 많이 낮아진 현 시점에선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신광식 기업정책팀장도 "그룹 전체적으로 200% 규제를 받다 보니 건설 종합상사 조선 등 업종이 부채를 많이 쓰면 다른 업종 계열사는 운신폭이 너무 좁아진다"며 "당초 정책목표가 어느정도 달성된 만큼 탄력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정진하 상무도 "기업 재무구조 악화를 방치해선 안되지만 기업이나 업종별로 부채비율규제는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용어] 부채비율 200%
재벌들의 차입경영방지를 위해 기업과 주채권은행이 약정을 맺어 부채가 자기자본의 2배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
■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어떤 형태로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방법상 완전폐지론과 대상축소론이 엇비슷했다. 이들은 현행 공정거래법이 '경쟁촉진'이란 근본 취지에서 벗어나 '경쟁규제'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30대 집단지정제도는 완전 폐지되어야 한다"며 "굳이 필요하다면 법적 개념도 아닌 기업집단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지주회사제도를 시스템을 도입해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정진하 상무도 "효율보다는 형평쪽으로 흐르고 있는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는 잘못됐으며 30대 기업지정제는 원천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위재벌의 독과점폐해 방지를 위해 5대 그룹 정도는 계속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도 적지 않았다. 산업연구원(KIET) 고동수 연구위원은 "5대 또는 10대 그룹 정도만 지정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고, 한성대 강신일 교수도 "상위 5대 재벌정도로 규제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존속론도 여전히 살아있었다. KDI 신광식 팀장은 "어느 나라든 대기업은 규제를 한다.
우리나라만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도 "재벌체제가 독립경영체제로 변화하기 전까지 현행 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용어] 30대 대규모기업집단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규모(계열사 합산) 순으로 1~30위 그룹을 매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출자총액제한 상호지급보증금지 부당내부거래조사 등 규제를 받는다.
■ 출자총액규제
30대 기업집단에게만 적용되는 규제인 만큼 30대 집단지정제 폐지ㆍ축소 맥락에서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애당초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과 함께 경영권 방어와 신규투자를 위해 한차례 폐지됐던 만큼 다시 부활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상시구조조정체제하에선 자유로운 투자와 인수합병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를 가로막는 출자총액제한은 취지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보완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KDI 신광식박사도 "재검토는 필요하지만 보완책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용어] 출자총액제한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는 순자산의 25%이상은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무분별한 출자(투자)를 막고, 투자를 하더라도 자기자금(순자산)으로 충당하라는 취지. 환란직후 적대적 인수합병(M&A)가 허용되면서 계열사 경영권 방어를 위해 폐지되었으나, 재벌들의 확장경영우려가 제기되면서 금년부터 다시 시행되고 있다.
■ 집단소송ㆍ집중투표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경제적 약자(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제도이나 보완책 마련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LG연구원 정진하 상무는 "자본주의 원칙과 철학에 관련된 사안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며 "다만 소송남용 같은 부작용방지를 위한 보완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KDI 신광식 팀장은 "집단소송제는 주주의 법적 권리와 직결된 사안으로 정ㆍ재계의 타협대상이 아니다"고 시행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사외이사제가 정착될 때까지 제한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ET 고동수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도 일부펀드는 집중투표제를 운용하는 기업주식은 사지 말라는 내부지침까지 있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시사용어] 집단소송제
허위공시와 부실기재 등으로 피해를 본 주주 중 일부가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할 경우 다른 주주도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곳에 대해 내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아래 현재 재경부와 법무부가 최종 도입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시사용어] 집중투표제
기업이 2인 이상 이사를 선출할 때 3%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요청하면 주총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 소액주주의 권리강화를 위한 제도로 기업이 정관에 이를 배제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으면 자동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주주나 회사 경영진이 원하지 않더라도 투표에서 외국인이나 소소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