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창작의 시간 / 만화가 양영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창작의 시간 / 만화가 양영순

입력
2001.05.16 00:00
0 0

새벽 4시부터 작업에 들어가 다섯 시간이 지났다. 쌓인 피로와 졸음이 밀려오지만 마감까지는 이제 한시간 남짓.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울린다."원고 이제 넘겨야 되는데.." 매니저의 목소리다. "다 돼가요." 매니저의 독촉을 받고나면 신문사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독촉에 치이다 보면 마음만 상하게 되지만, 이날은 데드라인까지는 가지 않았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합정동의 빌라. 만화가 양영순(30)씨가 새벽부터 일을 하며 맞는 것은 창가의 햇살이 아니다. 마감과의 싸움이다.

일간스포츠에 연재중인 '아색기가' 제112화의 마지막 컷 대사를 컴퓨터로 쳐 넣으면서 이날의 작업이 끝났다.

인터넷으로 전송해주면 오후에 신문에 나올 것이다.

"처음 연재할 때는 며칠 분을 미리 그려뒀는데, 최근 3주 동안은 그날 그날 그려요." 그가 최근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이 곳으로 이사하느라 바빴고, 그 전 일요일에는 여동생 결혼까지 겹쳤던 탓이다.

"3년이나 신문 연재를 하고 있는 어떤 선배한테 하소연 했더니, 자기는 2년 넘게 하루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사고 한번 안 쳤다면서."

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컴퓨터 작업으로 색과 대사를 집어넣어 연재만화 한편을 완성하는데만 네댓 시간. 조수 한 명 없이 4개월 넘게 매일 신문 한면 분량을 창작해온 것이다.

"조수를 당연히 둔 줄 알았다"고, 작업량에 놀라니 "어, 만화 질이 예전보다 못하나 보죠?"라고 웃었다.

조수 손이 닿아 데생력이 떨어져 보인다는 뜻으로 들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여린 편이어서 만화에 대한 반응을 안 들으려고 그래요.

'이게 만화냐' 그런 얘기 한번 들으면 완전히 기가 팍 죽는 스타일이거든요."

95년 들고 나온 섹스 코미디 '누들누드'는 만화계를 뒤집는 신기원이었다. 3년전 결혼할 때까지 숫총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유쾌한 섹스 유머는 인간의 성적 환상에 허를 찔렀다. '기동이'를 거쳐 '아색기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기는 여전히 싱싱하다.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으로 다운 데생력도 일품이다. 함정은 그러나 여기 있을지 모른다.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하면서 더 넓은 창작 역량을 보여주고 싶죠.

그런데 들어오는 주문이 '양영순씨 그 스타일로 해달라'는 게 많아요." 그 역시 섹스코미디란 정형화한 장르만화에 갇혀 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의 도발은 그러나 계속된다. "판타지 만화에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근데, 용은 안 나옵니다. '환상특급' 같은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요." 그의 눈이 반쯤은 감겼다.

3년차 부부의 잠 잘 시간을 뺏은 불청객이 된 셈인가. 작업대 하나를 뺀다면 여느 방과 다를 바 없는 이 작업실에서 그는 늘 새로운 몽상을 준비할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