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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김훈씨 장편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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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김훈씨 장편 '칼의 노래'

입력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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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언론인이자 문인인 김훈(53)씨가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발행)를 펴냈다. 1995년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후 또하나의 장편소설이다.작가는 '충무공의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썼다고 부제에서 밝혔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이 채 못되는 기간이 배경이다.

작가는 역사소설의 옛스럽고 유장한 문체를 사용하는 대신 짧고 현대적인 어휘를 택했다.

골동품 항아리를 세련된 포장지로 싸놓은 듯이 불균형이 기이하지만, 400여년 전 장군의 고뇌를 현대인이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다.

거꾸로 이 절제된 문체는 그의 장기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비장하며, 집중력이 있어 '칼이 부르는 노래'를 감당할 만한.

백의종군하던 중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는 임금의 교서를 받고 이순신은 답신을 썼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성은'에 감사하며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였을까.

작가는 충무공의 심경을 헤아려 봤다. 그러자 임금을 가여워하고 동시에 무서워하는 충무공의 처연한 마음이 잡혔다.

조정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고문했다가 단숨에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임금,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를 죽일 수 있는 임금. 그 임금을 향해 답신을 쓰면서 충무공은 세상 전체를 향해 칼을 겨눴다.

작가는 이순신을 일인칭 화자로 삼았다. '나'는 이순신이다. '나'는 그러나 '칼'로 바꾸어도 좋다. 충무공의 마음 속에 칼이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살인의 무기인 '칼'을 마음 깊은 곳에 둔 '나'는 언제나 죽음을 품고 있다.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이순신은 이렇게 썼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작가는 이렇게 번역했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전투를 앞둔 비장한 각오는 삶도 죽음도 모두 긍정하는 순명의 의지로 풀어진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주인공은 내외부의 적을 함께 맞아 싸워야 한다. 칼 찬 이순신은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고 노래했다.

이순신은 왜군이라는 주적과 정치라는 잠재의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양쪽으로 적을 둔 이순신은 검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짓는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 그는 색칠할 도(塗) 대신 물들일 염(染)을 골랐다. 염(染)은 공업적인 작업이다. 그만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훑는 소설에 이성(異性) 문제가 빠질 리 없다. 이순신에게는 '여진'이라는 여자가 있다. 여진은 그러나 정부라면 갖춰야 할 미모와 교태가 없다.

서른살의 관기는 손등이 터졌고 몸이 더러웠으며 날비린내가 났다. 나으리의 품에 두번째 안기면서 여진은 빌었다.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왜인의 씨를 밴 여진은 일찍 죽었다. 기생의 미추보다 지켜야 하는 지조가 앞세워졌다.

김씨는 한국일보에 편집위원으로 있던 99년 '풍륜'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기행'을 연재했다. 그는 "그 무렵 진도를 찾아갔을 때 이순신이라는 신화를 산문으로 육화할 결심을 했다"고 전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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