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세계적인 제약업체 노바티스가 개발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치료제 '글리벡(Gleevec)'이 1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신청 2개월 만에 시판 허가가 난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빨리 치료하지 않을 경우 생명이 위태로운 백혈병 환자들을 배려한 조치다.이에 앞서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생명이 급한 환자들에게 시판 승인이 나지 않은 약품(글리벡)을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동정적 사용법(Expanded Access Program)'을 국내에 처음 적용키로 했다고 지난 달 발표했다(4월 21일자 25면 보도).
식약청 관계자는 "대통령비서실 등에 환자들의 절실한 민원이 쏟아져 한국노바티스가 국내 임상시험을 위해 스위스 본사에 요청한 글리벡 전량을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 환자들에게 긴급 투여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동정적 사용법'은 제2차 임상시험이 수행된 약물을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무상으로 제공, 정식 허가에 앞서 시험 투약 하는 절차이다. 글리벡이 어떤 약이길래 이런 긴급한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CML은 골수에서 초기 미분화한 조혈모(造血母)세포(피를 만드는 원시세포) 등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악성 종양. 특히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만성기→가속기→급성기로 진행되며 급성기 환자의 대부분은 3~6개월 내에 숨진다.
국내에선 매년 400~500명의 환자가 발생하며, 성인 백혈병의 15~20%, 15세 미만 백혈병의 5~10%를 차지한다.
그동안 주된 치료법은 골수이식과 인터페론 주사. 골수이식은 완치가 가능한 유일한 치료법이나, 15~20%의 환자에게만 적용되며 시술 과정에서 20% 정도의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인터페론 주사는 독성과 부작용이 심해 초기 CML환자에게 주로 적용된다.
글리벡은 노바티스가 1999년 개발한 새로운 종류의 먹는 항암제.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반면, 글리벡은 CML의 원인인 비정상 'Bcr-Abl 단백질'만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1차 임상시험 결과 인터페론 치료에 반응하지 않은 환자의 98%에서 백혈병 세포가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제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립선암과 소세포성 폐암 등에도 효과가 입증돼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구토, 근육통, 부종, 발진, 설사, 두통 등의 가벼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며, 간질환, 출혈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3% 미만이다.
한국노바티스 프랑크 보베 사장은 "150명의 백혈병 환자가 한 달 간 투약 받을 수 있는 글리벡 2만 7,600정을 공익법인인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 무상 기증했다"고 밝혔다.
식약청은 백혈병 치료 전문가들로 심사위원단을 구성, 19세 이상의 가속기와 급성기 CML 환자에게 투여할 계획이다. 임신부나 수유 중인 여성,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고 아직 회복하지 못한 환자, 의학적 상태가 심각해 투약이 어려운 경우 등은 제외된다.
고재학 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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