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건소에 들렀다가 그냥 돌아섰다. 대기자가 18명이나 되더구나. 저녁이면 녹초가 된 너를 보며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 모습이 자랑스럽다.너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마음이 여리고 갸냘펐지. 남들과 아픔을 같이 하고 식구들의 생일 등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했지. 내가 조금이라도 울적해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안기곤 했지. 또 너희들을 떼어놓고 학교에 갈 때마다 너는 유난히도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외던 네가, 아버지의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여 수학과를 다니더니, 수학공부는 천재만 하는 것이라며 다시 의학공부를 시작했지. 너는 어릴 때부터 참으로 연약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주장이 뚜렷했지.
나는 네가 아버지의 정년퇴임과 때를 같이 하여 같은 대학의 의사로 온 것이 너무나 마음 뿌듯하단다. 점심 한 번 같이 하기도 어렵지만 네가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자리매김을 한 것 같아 더욱 든든하단다.
영주야, 그저께 너의 얘기를 들으면서 당당한 전문여성으로서의 네 모습을 발견하곤 대견스러우면서도 깜짝 놀랐다. 그 추운 겨울 꼭두새벽에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떨고 섰던 여린 모습과 미소가 아직도 생생한데.
너는 어릴 때 떼를 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어린이날이었는데 아마 네가 6살쯤 되었을까, 혼자서 길을 잃고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던지 너를 금방 찾았지. 또 어느 날은 울다가 창자가 빠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뛰기도 하고 걸핏하면 팔도 빠지곤 했지. 이제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쓰럽구나.
영주야. 이렇게 티없이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미안하다. 너희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는 곁에 있어 주지 못했구나. 수업이 없는 날은 집에서 함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적어도 낮 동안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그 융통성 없는 철칙을 지키느라 함께 하지 못했구나.
그런데 너도 나와 똑같이 너의 철칙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구나. 너는 의사가 되어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가슴앓이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영주야,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니. 병든 사람은 모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꼭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것만이 봉사가 아니라고. 모두들 네가 자상하게 정성을 다해 진료해 준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들이 아파 괴로울 때 너의 정성어린 손길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
나는 늘 네 건강이 걱정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또 그것으로 위로를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서 다 지고 가려고 생각하지 말자꾸나.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면 훨씬 홀가분할 수도 있단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푸른 하늘도, 산기슭에 핀 꽃도 보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부모-자식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날이 갈수록 어쩌면 그렇게 닮아가는 거니. 나는 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곤 한단다. 그저께 메일로 보낸 네 편지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당당한 전문인이 되어 내 앞에 우뚝 섰구나.
그래, 네 말대로 이제 내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할 동지가 되었구나. 당당한 전문인이 된 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 딸이지만 너의 모습은 황홀할 정도로 정말 아름답구나.
사랑한다, 영주야.
李 東 瑗 이화여대 교수ㆍ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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