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사흘째인 탈북여성 김순희(37)씨는 10일(현지시간) 익명의 한인 사업가 집에 머물며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다. 김씨의 석방을 도운 한청일(54)씨는 “김씨가 외부와 접촉을 삼간 채 망명 심사와 미국 생활 적응을 위해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했다.김씨를 돕기 위해 인권변호사들이 팔을 걷어붙였고 김씨의 법정 통역관 한상희(24ㆍ여)씨도 망명 심사가 끝날 때까지 무료 통역을 자처했다. 김씨는 이 같은 주변의 움직임에 용기를 얻어 미국에 정착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적 차원에서 김씨를 도와주고 있는 샌디에이고의 카사 코넬리오 법률센터 등 인권 단체와 한인 관계자들은 일단 15일께(현지시간) 김씨의 망명을 정식 신청할 예정이다. 김씨가 미국 정부의 망명을 허락받기까지는 최소한 1년 이상의 절차와 까다로운 망명 심사를 거칠 전망이다.
김씨는 일단 첫 고비인 보석허가 심리를 통과, 석방된 상태에서 다음달 초 1차 망명심사를 받게 된다. 1차 심리에서 100% 재량권을 행사하는 이민법원 판사는 김씨의 망명신청 자격을 판단하기 위해 김씨가 망명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북한 국적여부를 집중 조사하게 된다.
미국 망명 관련법은 망명 신청자들이 출신국에 돌아갈 경우 인종, 국적, 종교, 정치, 사회활동 등 5개항 중 하나의 이유로 처벌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망명 자격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씨는 망명 신청 후 150일이 지나면 망명이 허락되기 전이라도 이민국(INS)에 노동허가증을 신청,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망명이 허락될 경우엔 중국에 ‘볼모’로 남겨 둔 아들도 초청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김씨가 북한에서 탄압받은 사실이 없는 만큼 김씨가 북한 국적자임을 증명하고 종교적 자유를 이유로 내세우면 망명 허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망명자가 제3국에서 장기간 거주했을 경우 제3국 주민으로 간주돼 망명 신청이 기각될 수 있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밀입국전 김씨가 중국 옌볜(延邊)에서 6년여간 살았기 때문에 망명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INS의 1994~2000년 통계에 따르면 북한인 36명이 망명을 신청했으나 단 1명만이 망명을 허락받았다.
/샌디에이고=하천식ㆍ조동환기자
■"金씨 망명 美·유엔에 협조요청"
한국에 본부를 둔 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운동본부(본부장 김상철ㆍ金尙哲)는 미국에 밀입국한 탈북여성 김순희(37)씨의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미국을 방문, 미 행정부와 유엔(UN)에 인도적 차원의 협조를 요청키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김 본부장은 오는 16일 질리앤 소렌슨 유엔 사무총장보를 면담, 1,180여만명의 탈북자 인권보호 및 난민지위부여 청원서를 제출한 뒤 이 자리에서 김씨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방침이다.
김 본부장과 박근(朴槿) 전 유엔대사, 김영진(金泳鎭ㆍ민주당) 의원, 박홍(朴弘) 서강대 명예총장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또 토니 홀, 찰스 랜젤, 벤자민 길만 연방하원 의원 등도 만나 김씨 등 탈북자들이 국제법상 난민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할 방침이다.
이들은 귀국길에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탈북자의 생활상과 북한 당국의 탈북자 처벌 실태 등이 담긴 보고서를 관계자에게 전달, 김씨의 망명 심사 때 법정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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