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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사랑하는 아내 오리와 딸 현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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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사랑하는 아내 오리와 딸 현주에게

입력
2001.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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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맞는 27번째 5월. 가슴저리게 떠오르는 일이 많아요.오래 전 우리의 사랑이자 생명이었던 아들 성주가 하늘나라로 간 것도 봄꽃이 세상을 환하게 밝힌 5월이었지요. 귀여운 딸 현주가 의젓한 편지로 슬픔에 잠긴 우리에게 한 줄기 삶의 밝은 빛을 주던 것도, 그리고 2년 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로서 영국과의 합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때도 5월이었지요.

사랑하는 오리.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운아입니다.

당신은 나의 존경하는 아내, 가장 친한 벗,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똘마니이자 보스이기도 합니다. 힘겹고 어려울 때마다 내게 가장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지요. 합작 후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를 세계 최고 유통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쉼없이 달려오던 중 병원 신세를 져야했을 때도,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사람도 당신과 현주였습니다. 이건 나의 행운이지요.

사랑하는 오리. 우리는 슬픔과 시련을 통해 참된 인생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소중한 아들 성주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당신마저 충격으로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채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는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굳건히 다시 일어날 수 있었지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사랑도 슬픔과 고통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나왔기에 더욱 영글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리 씨. 우리는 인생의 스티어링 휠(Steering Wheel) 목표를 함께 디자인 했었지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가족, 건강, 친구,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같이 했지요.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는 신혼처럼 지내고 취미를 같이 하고 봉사하는 가족이 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그런데 실은 늘 맘에 걸리는 것이 월1회 연애편지쓰기 목표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꺼번에 편지를 보냅니다.

1월 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2월 분.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

3월 분. 나는 당신을 더욱 더 사랑합니다.

4월, 5월 분은 몰아서 이 편지로 대신해도 될까요. 오리씨.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인 봉사하는 가족으로 누군가에게 사랑과 기쁨을 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문득 당신이 얼마 전 33년간의 손때 묻은 일기를 묶어 펴낸 책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늘을'에서 얘기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오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사랑하는 오리 씨. 나에게 한 가지 소망이 더 있는데, 알고 있어요? 그것은 음, 우리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거랍니다.

현주야, 미안하다.

2001년 5월 당신의 승한으로부터

*오리는 아내의 애칭으로 신혼 때 삐칠 때면 언제나 입을 쑥 내밀었는데, 얼굴 생김새나 모습이 흡사 디즈니랜드 영화에 나오는 오리와 똑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아내의 이름은 엄정희이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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