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선제공격에 나섰던 재계가 진념 부총리 및 재정경제부장관,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역공을 취하자 일단 한 발짝 물러섰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오후 서울 힐튼호텔에서 5월 정례 회장단회의를 열어 경제정책 개선방안 등을 논의, 정부와 재계가 힘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며 문제를 순리적으로 풀어가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호놀룰루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중인 진 부총리까지 나서 재계를 압박하는 발언을 하자 "재계가 너무 앞서 나간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회장단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의 일련의 사태는 재계가 정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정부 기업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고 앞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와 재계가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 정리를 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재계가 얘기하는 정책의 문제점은 지금까지 줄곧 주장해온 것인데 새삼스럽게 정부에 반발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며 "정부가 현실을 감안해 제도운영에 융통성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계도 개혁을 해야한다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에선 다소 정부와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회장단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의 철폐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정리, 개선방안을 주말께 정부에 건의하고 경제의 체질강화를 위해 신규 유망산업 및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 증대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회장단은 또 출자총액 규제 완화 등 그동안 재계가 요구해 온 정책 과제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계속 정부와 접촉키로 했다.
전경련은 회장단회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정책개선 방안을 마련해 16일 열리는 정ㆍ재계 간담회 등을 통해 정부 당국에 건의할 방침이다. 또 6월17~19일 동안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재계회의에서 양국간 경협증진에 적극 나서기로 하는 등 대정부 화해제스처도 병행하기로 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재벌규제' 학계도 의견 엇갈려
정ㆍ재계간 재벌규제 논쟁의 핵심테마인 30대 대규모기업집단지정과 출자총액제한에 대해선 학자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제도를 찬성하는 쪽에선 한국재벌의 반(反)시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는 "규제를 풀어 재벌의 경쟁적 확장을 방치할 경우 국가경제에 큰 위험이 된다"며 "현재의 선단식 경영이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로 완전 전환될 때까지 출자총액제한제 등은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통신대 김기원 교수는 "재벌들은 재벌을 규제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재벌이 있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책임전문경영체제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출자총액제한이나 30대 대규모기업집단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엄밀히 말하면 출자총액도 재벌개혁수단으론 불충분하며 불법변칙 경영권상속과 금융지배금지, 집단소송 및 집중투표제 도입 같은 보다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규제를 풀고,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경희대 안재욱 교수는 "시장경제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며 "출자총액이나 30대집단 지정 같은 인위적 규제로 재벌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뿐더러 기업과 채권단이 스스로 판단해 투자결정을 내리고 경쟁을 통해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성대 이우관 교수도 "정부가 한편으론 경쟁촉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빅딜을 통해 기업을 합치고 신규투자를 규제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며 "기업활동에 관한 한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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