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5월11일 일단의 국학자들이 한국의 역사 언어 문학 등을 연구하기 위해 진단학회(震檀學會)를 조직했다. 발기인은 고유섭 김윤경 김태준 이병기 이병도 이윤재 이희승 문일평 조윤제 최현배 등이었다. 이들은 계간 기관지 '진단학보'를 창간해 14집까지 출판했다.학보의 초대 편집인 겸 발행인은 역사학자 이병도였다. 그러나 42년 일제의 강압에 따라 학회는 자진해산의 형식으로 해체되고 학보의 간행도 중단됐다. 해방 이후 학회의 재건과 함께 학보도 복간됐다.
진단은 한국의 별칭이다. 진(震)은 중국의 동쪽이라는 뜻이고 단(檀)은 우리 민족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단군을 가리킨다.
발해는 스스로를 진국(震國)이라고 불렀고, 고려 역시 진단이나 진역(震域)을 자처한 바 있다.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청구(靑丘)라는 말도 있다.
청(靑)은 오색(五色) 가운데 동방을 나타내는 빛이고 구(丘)는 땅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청구란 곧 동방의 세계다. 해동(海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해동은 중국에서 보아 우리 나라가 발해 동쪽에 있다고 해 생긴 이름이다. 결국, 근대 이전 한국인의 마음 속에서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던 셈이다.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삼게 되자, 중국은 한국과 함께 '극동'이 되었다. 영조 때 김천택이 엮은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과 역시 영조 때 김수장이 엮은 시조집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이 청구와 해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계림(鷄林)은 본디 경주를 가리키다가 그 의미가 신라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되었다.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삼국시대의 설화를 모아 엮었다는 '계림잡전(鷄林雜傳)'이나 중국 송나라 때 손목(孫穆)이 지은 고려 관련 백과서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이 계림이라는 말이 보인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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