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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장경제의 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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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장경제의 敵들'

입력
2001.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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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기업원 원장이 쓴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글은 정부가 체제 변혁을 노리는 시민 단체와 합세해 우리 사회를 좌경화와 국정 파탄으로 몰고 있다면서, 우익은 잠에서 깨어나 궐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재계가 재벌규제 완화를 요구한 것에 맞춘 글이지만, 표현과 논리가 전에 없이 강경하다.재계가 돈을 대는 곳이라 평소 그러려니 치부하지만, 이번에는 보수 언론까지 편들고 나선 판이라 무심하게 지나치기 어렵다.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라 제목 붙인 이 글은 명색이 학자의 논리로 보기에는 조잡하고 졸렬하다.

'지금 한국은 여러 국면에서 좌익의 지속적 공격을 받는 6ㆍ25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서론부터 과거 반체제 운동권의 강퍅한 격문을 연상케 한다.

민노총ㆍ 전교조ㆍ참여연대 등을 '무시무시한' 변혁을 꾀하는 세력으로 매도한 것은 그렇다 치고, 재벌개혁 정책의 부당성을 지적한 대목 자체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그는 재벌개혁이 기업 대주주를 억압하고 소액주주 권한을 확대했다고 비난했다. 재벌 오너가 다수 소액주주의 권익을 도적질 하듯 한 악습이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한다는 얘긴지 궁금하다.

이를 바로 잡고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정책이 과연 자본주의 근간을 침식하는 체제 변혁인지 되묻고 싶다.

자본과 기업의 자유방임이 지선(至善)이고, 모든 사회적 규제는 시장경제의 적으로 보는 자본주의 인식은 중등 교과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그가 수호하자고 외친 형태의 시장경제는 좌우 이념이 동거하는 유럽은 물론,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미국의 현실과도 거리가 멀다.

시장과 규제에 관한 자본주의 체제의 오랜 논쟁은 잊은 양, 대뜸 색깔 공세를 편 것은 천박하다. 그가 어쭙잖게 흉내낸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제시한 사회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사회다. 강퍅한 논리로 '민중'을 적대시하는 자세가 바로 열린 사회의 적이다.

이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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