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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어사전 /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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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어사전 / "깨다"

입력
2001.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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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①조각내다 부수다 ②일을 방해하다 ③약속 따위를 취소하다 ④(술ㆍ잠ㆍ약ㆍ환상 등에서) 깨어나다 (새국어사전ㆍ이기문 감수ㆍ동아출판사)●새 정의: ①기대에서 빗나가 황당하다 ②수준이 낮다 ③어처구니가 없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감정표현이 확실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에두르는 법이 없이 느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재미없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억지로라도 웃어주지 않고 '썰렁해'라고 핀잔을 주고, 누군가 귀찮게 굴기라도 하면 주저없이 '짱(짜증)나'하면서 구박을 한다.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용기를 내 쫓아갔는데 앞모습이 엄청나게 실망스러울 때도 그냥 돌아서지 않고 심중에 있는 말을 그 대로 내뱉고야 만다. "깬다." 기대나 환상이 깨졌다는 얘기다. '깬다'는 이런 실망과 황당한 기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깨다'가 이렇게 쓰인 것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번개팅이 유행하면서부터"라고 장미영(張美英ㆍ22ㆍ연세대 상경계열3)씨는 말한다. 인터넷 채팅을 하다

'킹카'라고 자처하는 상대방의 말만 믿고 약속장소에 나가 보면 대부분의 경우 요즘 말로 '폭탄'인 사람이 나온다. 그렇게 '어떤 기대감이나 환상을 깨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깬다'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일반적인 규범이나 문화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깬다'를 쓴다. 너무 달라서 정신이 번쩍 들 때도 '깬다'고 말한다. 그래서 '깬다'는 말에는 청소년들의 문화적인 배타성이 엿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현(수원 청명고) 교사는 "'깬다'는 말은 공통의 문화적 규범에서 벗어날 경우, 이를 비난할 때 많이 쓰는 것 같다"며 "다른 성향을 가진 아이를 친구로 사귀지 않는 폐쇄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힙합스타일의 옷을 고집하는 아이들에게 복고스타일의 옷을 입는 아이는 '깨는' 아이가 되고, god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HOT가 최고'라고 주장하면 '깬다'고 한다.

엽기적인 것도 '깬다'에 들어간다. 얼마 전부터는 인터넷에서 '깬다 시리즈'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 초등학교 글짓기 시험에 '( )라면 ( )겠다'를 사용해 완전한 문장을 지어보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내가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 등을 정답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출제했는데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컵)라면 (맛있)겠다.'이럴 때 하는 말이 바로 '깬다'이다.

지금 한국인들이 쓰는 새로운 말을 '21세기 문화어사전'이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문화어를 알고 싶거나 소개하고 싶으신 분은 한국일보 여론독자부로 연락을 주십시오. 전화 (02)722- 3124 팩스 (02)739-8198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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