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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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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입력
2001.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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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현대의 문명은 소리의 문명이다. 서울도 아직 소리가 부족하다. 종로나 남대문통에 서서 서로 말소리가 아니 들리리만큼 문명의 소리가 요란하여야 할 것이다."1917년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했을 무렵 이광수는 '도회지의 소리'를 '문명의 소리'로 들었다.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에게 수레바퀴 소리와 쇠마차 소리, 증기기관 소리는 '계몽을 알리는 소리'로 들렸다.

이광수는 길 이름을 개정된 일본식으로 썼다. 1914년 행정구역이 새로 나뉘면서 '로(路)'라는 명칭은 종로 하나만 남았고 나머지는 '도리(通)'로 바뀌었다. 광화문통 남대문통 한강통 등이 그것이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건축물과 도시 풍경을 따라간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이 출간됐다.

저자인 김정동(63) 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 교수는 '문학동선(文學動線)'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김 교수는 작품 속의 과거 어느 날 명동과 종로거리를 추억 속의 작가와 함께 걸었다. 그는 작가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작가의 마음까지 헤아렸다.

염상섭 '만세전'(1924)의 주인공 이인화의 눈에 비친 1920년대 식민 항도 부산은 강요된 근대화로 땅과 집을 잃어버린 민중의 도시였다. 이인화가 찾아낸 "납작한 조선가옥"도 가까이서 보면 "일본식 창살틀을 박은 것"이었다.

'김강사와 T교수'(1935)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전임강사로 일했던 지식계급 출신 유진오가 아니었다면 생산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불안한 처지에 놓인 김강사는 총독부 H과장을 만나기 전 혼마치(本町)에서 서양과자를 한 상자 구입한다. 혼마치는 지금의 충무로 입구다. 저자는 1930년대 일제 지식인집단이 뇌물 주고 골프 접대하는 오늘의 교수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건축을 전공한 저자가 뒤쫓은 26세의 건축가 겸 시인이었던 이상의 발걸음이 흥미롭다. 소설 '날개'(1936)에서 경성 거리를 방황하던 이상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백화점 옥상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어디로 어디로 디립ㅅ다 쏘단였는지 하나토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이 대낮이었다."

미쓰코시(三越)는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이다. 이상이 소설을 쓰기 6년 전인 1930년 10월에 준공된 것이다. 그는 백화점 옥상에서 '모던 서울'을 보았다.

"사람들은 모도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1936년에는 이미 건축물에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 등이 쓰여지고 있었다. 이상은 그러나 현란한 도시 풍경 속에서 가속화하는 일제 침략을 보았다.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나려다 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레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힘을 잃어가는 지식인은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이상은 '날개'를 발표한 이듬해 날개를 접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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