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이야기로 교수는 거지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것이 닮았고, 얻어먹으면서 큰 소리 치는 것이나 직업을 잘 바꾸지 않은 것도 닮았다고 한다.한 마디로 편하고 좋은 직업이라는 뜻인데,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1년에 논문 한편' 정도의 형식요건만 갖추면 승급과 승진은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강의를 잘 하건 못 하건 정부나 재단의 비위만 건드리지 않으면 정년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적지 않은 교수들이 스스로 나태해졌다. 편히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굳이 힘들게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몇 일전 대통령이 '실력 없는 교수'는 대학에서 내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참으로 지당한 밀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내놓고 있다. 정치권 행정권과 함께 대학은 실력과 관계없이 버틸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장소가 되고 있다. 더 이상 성역으로 둘 이유가 없다.
사실 실력 없는 교수의 폐해는 대통령이 지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하다. 단순히 학생을 잘 못 가르친다는 문제를 넘어 학사행정의 개혁이나 학내 민주화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
실력이 부족한 만큼 재단이나 대학행정 책임자에 대해 당당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이들로부터 비호를 받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연구는 뒤로 한 채 캠퍼스 폴리틱스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각종의 대학개혁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이야기한 '퇴출'과 관련하여 몇 가지 걱정이 생긴다.
첫째, 퇴출의 정확한 기준을 확립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의지를 일부 사학재단이나 대학행정 책임자가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교수의 실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논문의 숫자만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고, 학생들의 평가만으로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학교에 따라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겠지만 이 과정에서 사학재단이나 대학행정 책임자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학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가 합리적 비판세력을 제거하는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 만에 하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교수들 스스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대학은 더욱 엉망이 될 것이다.
'퇴출'을 두려워 한 교수들이 재단과 대학행정에 대해 올바른 비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대학운영은 더욱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개혁의 바람을 타고 도입되고 있는 각종 평가제도가 교수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기준으로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대학개혁 의지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포함한 학내 민주화 개혁이 반드시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학재단의 절대적 지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출'만 이야기하는 것은 교수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키게 되며, 나아가서는 대학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게 된다.
교수노조 운동 등 보다 진보적인 운동을 가속화시키며 학내외에 필요이상의 긴장과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대통령 이야기가 개혁은 인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라고 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올바른 개혁은 인기도 함께 한다. 인기 있는 올바른 개혁안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김병준·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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