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일본 정부에 전달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재수정 요구안은 일본의 뒤틀린 역사인식과 사실(史實)기술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교정서’ 성격을 띠고 있다.◆사관에 대한 시정 요구
시대착오적 사관에 의해 씌어진 고대사와 근ㆍ현대사의 왜곡에 대해 메스를 가함으로써 일본의 퇴행적 역사관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의지가 집약돼 있다. 강영철(姜英哲) 국사편찬위 편사부장은 “부분적인 사실 낱낱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교묘한 표현 속에 위장된 일본 역사인식의 본령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술에 대한 수정 요구와 함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편찬한 후소샤(扶桑社) 교과서의 역사인식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재수정을 요구한 항목은 후소샤 교과서 25개 항목과 기존 7종 교과서 10개 항목 등 35개 항목. 자료가 충분하고 관련 증언도 풍부해 일본측 반박의 예봉을 꺾을 수 있는 근ㆍ현대사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 사실을 미화한 중세ㆍ고대사 부분도 상당히 포함됐다.
역사논쟁으로 비화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후소샤 교과서
재수정 요구의 주 대상은 후소샤 교과서. 정부는 이 교과서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역사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역사를 폄하하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다.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일본 조공설을 기술하거나, 조선을 중국의 복속국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임나일본부설’은 한국과 일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이를 기정사실화, 한일 관계사 서술에서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논리로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고, 태평양전쟁 당시의 반인륜적 잔혹행위의 실체를 은폐한 대목은 “인근 제국에 대한 배려에 충실한 검정이었다”는 일본 정부 주장의 허구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최근 유엔인권위에 제출된 쿠마라스와미와 맥두걸의 보고서에서 군대위안부 동원을 반인륜적 전쟁범죄로 규탄하고 있으며, 1993년 8월 일본 관방장관 담화에서도 군대위안부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반박의 근거로 제시했다.
임진왜란, 강화도 사건, 한국 강제병합 등의 설명에서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거나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지적했다. 관동대지진의 경우 군경에 의한 살해를 은폐하고, 살해대상도 사회주의자, 조선인, 중국인식으로 병렬해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조선인 피해를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침략을 위해 일으킨 러일전쟁을 마치 일본이 황인종을 대표해 백인종과 싸운 것처럼 서술한 것은 일본 우익의 우월주의 사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7종 교과서
정부는 기존 7종 교과서도 임나일본부설, 왜구, 임진왜란, 정한론, 강화도 사건, 동학농민운동, 한국강제병합, 황민화 정책 등의 기술에서 종전보다 역사인식이 크게 후퇴했다고 보고 있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교과서가 7종에서 3종으로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니혼분쿄슛판(日本文敎出版) 교과서가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 일본은 한국을 병합했다’고 기술한 것은 한국강제병합의 계획성을 은폐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사카쇼세키(大阪書籍) 등 2종의 교과서는 반외세, 반봉건 항쟁인 ‘동학농민운동’을 농민들의 반란으로 적어 한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수정을 요구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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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이란
정부간 입장을 전달하는 외교문서로는 비망록(Aide-Memoire)과 구상서(note verbal)등이 있다.
비망록은 한 국가의 대표가 상대국 대표에게 구두로 입장을 전하면서 그 내용을 문서 형태로 만들어 건네는 것을 말한다.구상서는 문서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질의,통고,의뢰 등의 경우 사용되며 서신 형태다.
비망록은 구상서보다 더 중요한 사안일 경우에 이용된다.
1982년 역사교과서 파동 때에도 비망록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부 관계자는 "비망록에는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뜻을 철저히 새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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