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집필한 후소샤(扶桑社)의 검정 신청본이 문제가 많다고 보고 일본 정부의 검정 과정을 주목해 왔다. 지난달 3일 일본 정부가 검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제가 될 부분은 모두 수정했다"고 주장하자 왜곡 실태 분석과 재수정안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지난달 12일 범정부 차원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반(반장 김상권ㆍ金相權 교육차관)'이 구성되고, 역사학자 9명이 참여하는 정밀 분석팀도 가동됐다. 20일까지 계속된 1차 분석작업 결과는 후소샤 교과서 분석자료가 A4 용지로 64쪽, 기존 7종 교과서 분석자료가 17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 자료에 객관적 공신력을 부여하는 작업은 국사편찬위가 맡았다. 국사편찬위는 20여명이 철야작업을 한 끝에 객관적 자료부족 등으로 일본측의 반발이 예상이 되는 내용을 빼고 지난달 28일 75쪽에 이르는 2차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은 지난달 30일 정부 대책반, 역사전문가, 자문위원단의 최종 점검을 거쳐 부소샤 교과서 25항목, 기존 교과서 10개 항목으로 간추려 졌다. 정부는 이 안을 국회에 보고한 뒤 4일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전달하려 했으나 당정협의 과정에서 민주당으로부터 보다 강력히 재수정을 요구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에 따라 강제동원의 한 사례로 기술됐던 군대위안부 문제가 별도 항목으로 처리되고, '검토의견'도 '수정요구 의견'으로 표현이 한층 강경해졌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 日교과서 채택.보급절차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다음달 중순께 일본 전국에서 전시회를 통해 견본이 공개된다. 동시에 채택 절차가 시작돼 8월15일까지 매듭된다.
사립학교는 학교별로, 공립학교는 각급 교육위원회별로 채택 작업에 들어간다. 교육위원회별 전문가 회의가 교과서 내용을 비교 검토해 적절한 교과서를 추천, 교육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전문가 회의는 비교 검토를 대개 현장 교사들에게 맡겼으며 학교별로 희망 도서를 밝히는 방식도 널리 활용됐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의 적극적인 로비의 결과
현장 교사의 의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학부모의 의견을 강하게 반영하는 교육위원회가 크게 늘어 날 전망이다.
교육위원회별로 채택된 교과서는 내년 4월초 신학기에 학생들에게 배포된다. 올해 검정 대상인 초중학교 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의 예산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국내반응 / "정부차원 지속압력 필요"
시민단체와 학계, 정치권은 8일 우리 정부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재수정 요구안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수정안을 일본으로 하여금 어떻게 수용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라며 한 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수용을 촉구했다.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등 6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미 일본이 '수정 의사 없음'을 공공연히 밝힌 만큼,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선별적인 문제 제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인식 방향에 보다 근본적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정안 작성에 참여한 이성무(李成茂) 국사편찬위원장은 "일본의 우경화 논리를 명확히 반박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상설 대응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도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역사왜곡 항의 단식 농성'을 벌였던 민주당 김영진(金泳鎭) 의원은 "수정안은 일본이 은폐ㆍ왜곡한 역사의 최소 분량"이라며 "일본 정부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조속한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日 엇갈린 반응
일본 언론과 관련 단체들은 8일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에 대해 평소의 시각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NHK등 방송은 이날 오전 정규 뉴스시간에 머리기사로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을 열거했지만 사실 보도에 그쳤다. 주요 신문은 이 소식을 석간1면 머릿기사 등으로 보도하면서 저마다의 입장을 강조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 신문은 각각 "일본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여서 그동안 양호했던 양국 관계가 불안정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한국측의 요구는 사실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아사히·마이니치·도쿄 신문은 한국측이 내용 검토와 표현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강조하고 양국 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신중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날 한국측 요구에 대해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한 재수정 요구는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겠지만 재수정은 안된다"고 밝혔다. 이 교과서 내용에 반대해온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넷트21'측은 "한국정부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진작에 스스로 수정했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햇다.
도쿄=황영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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