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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日교과서 요구' 전문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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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日교과서 요구' 전문가 대담

입력
200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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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 위원장-이만열 교수 ▼정부가 8일 일본정부에 일본 중학교 교과서 내용 중 35개 항목에 대해 재수정을 공식 요구하면서 교과서 왜곡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교과서 재수정 요구안을 최종 검토한 이성무(李成茂ㆍ64)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인 이만열(李萬烈ㆍ63) 숙명여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한달여 동안 진행돼 온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을 돌아보고 재수정 요구안의 의미와 향후 대책 등을 들어본다.

▦이성무 위원장=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터졌을 때 국민적 반일 여론을 통해 독립기념관 건립이란 성과물을 만들었는데, 이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의견이 오갔다. 이전처럼 흥분하는 것 보다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책반이 구성돼 문제의 교과서를 정밀 검토한 후 재수정안을 만들게 됐다. 논리적으로 일본을 압박하자는 것이다.

검토 결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후소샤(扶桑社) 교과서가 일본 역사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한국 등 주변국의 역사를 깎아 내리는 전쟁사 중심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다. 특히 한국사를 언급할 때 '조공 종속 속국' 등의 용어를 사용해 폄하하면서 은근히 일본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다. 자국의 우월성 강조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까지 회피하거나 남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나머지 7종 교과서도 일본의 전반적인 우경화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만열 교수= 이번 재수정 요구안은 사실의 오류, 해설의 왜곡, 내용의 축소 누락 부분으로 나누어서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관련된 문제만 제기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예를 들면, 일본군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난징(南京) 학살 부분은 빠져 있다.

또한 일본교과서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대한 침략을 구미제국으로부터의 해방전쟁이었다는 식으로 왜곡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도 없다.

역사교육이 단순히 한 나라의 이해관계만 걸린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런 부분도 그대로 지적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성무=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역사까지 거론하는 것은 무리다. 여러 외교적 문제도 걸려 있다. 우스운 것은 중국은 이 문제에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앞장 서는 것은 잘한다고 박수치지만. 앞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북한 등과 공조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개발원에서 중장기계획으로 공조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만열= 재수정 요구안을 보면서 왜 이제야 이런 조치가 나왔는지 아쉬웠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교과서 개편 논의가 있었다. 일본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적 안정이 깨지자 위기를 만회하기 위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것이 국수주의적 방향으로 모아졌다. 역사교과서 개편 논의도 여기서 싹텄다.

1993년 자민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심상찮은 움직임이 계속 나왔다. 우리 학계도 이런 흐름에 주목해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정부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우리 정부가 외국과의 연대 문제를 중장기 계획으로 잡고 있다고 했는데, 이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텐데 '중장기'로 느긋하게 준비한다고 하니까 정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성무= 이번 문제의 심각성은 교과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일본의 전반적인 우경화에 미일 관계가 변수로 개입돼 있다. 일본 우익들이 일본의 군사력을 제약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고 하는데, 이는 평화헌법을 만들었던 미국의 지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일본과 연계해서 중국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국제적 상황과 자민당이 무너진 국내적 정치상황 틈새에서 일본의 극우세력이 상당히 성장했다. 교과서 문제 하나로 대처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 기본노선이 한ㆍ미ㆍ일 공조가 아닌가. 공조를 하면서 한편으로 교과서 문제로 일본을 몰아세워야 하는데,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격으로 대단히 곤혹스러운 면이 있다.

▦이만열=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일본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개방화정책을 펴왔다. IMF 사태 이후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가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동선언했다.

우리 정부가 문화 개방을 하면서까지 적극적인 한일 관계를 모색했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 격이다. 한일 친선관계 때문에 애매하게 대처하면 가치판단의 혼란만 빚는다.

지금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친선정책을 쓸 때는 쓰되 교과서 왜곡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국민에게 혼선을 주지 않는다. 개방할 것은 개방하고, 협력할 것은 한다, 하지만 왜곡은 안 된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성무= 현재 정부는 한일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고, 문화개방도 연기하겠다는 등 초강경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가 강하게 나가자 일본도 상당히 당혹스러워 한다. 물론 일본이 교과서 수정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정권을 잡은 지금,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 강하게 수정을 요구하면 어떤 식의 반향이 나올 것이다. 기조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대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만열= 고이즈미 내각이 그래도 모리 요시로(森喜郞) 내각보다는 나은 면이 있다. 93년 자민당 내에서 역사검토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모리 총리가 당시 간사를 맡았고, 그 밑에 핵심역할을 한 7명이 모리 내각에 참여했었다. 이제 그들이 빠져 나갔기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가 국가 운영에서 어떤 융통성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확고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파동을 통해 우리 문제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국사 교육은 문제가 없을까.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 부분이 검인정 체제의 선택과목으로 변하는데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 교육 뿐만 아니라 90년대 들어 대학에서도 국사가 교양필수에서 빠졌다. 미국 대학은 미국사와 민주주의론, 두 과목을 교양필수로 꼭 묶어두고 있다. 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역사는 기본적인 교육이다.

▦이성무= 고등학교 국사교육 문제는 국회에서도 제기됐지만 교육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7차 교육과정 시행을 앞두고 교과서 개발까지 다 해놓은 상태에서 변경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5년 뒤인 8차 과정에서 개편하자는 입장이어서 아쉽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에 역사박물관이 하나도 없는 것도 유감이다. 우리 역사를 이렇게 정리했다고 해외에 떳떳이 보여줄 게 없다. 82년의 교과서 왜곡파동이 독립기념관을 낳았다면 이번 왜곡파동은 역사박물관이란 큼직한 성과물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참석자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

▦ 1937년 충북 괴산 출생 ▦ 서울대학교 사학과ㆍ 동대학원 졸업 ▦ 국민대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등 역임 ▦ 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 1938년 경남 함안 출생 ▦ 서울대학교 사학과ㆍ동대학원 졸업 ▦ 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역임 ▦ 현 한국사학사학회 회장,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연구소 소장, 숙명여대 교수

정리=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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