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락사' 논쟁을 계기로 호스피스(hospice)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호스피스란 말기 암 등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의료서비스. 1~5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ㆍ태평양 호스피스 학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소개한다.
■무의미한 의료비 절감
의료보험공단 일산병원 염창환 박사는 임종을 앞둔 암환자의 마지막 1주일간 의료비용을 조사한 결과 자선기관 호스피스가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가정 호스피스, 병원 호스피스 병동, 병원 비(非)호스피스 병동 순이었다.
여의도성모병원 종양내과 홍영선 교수는 "말기 중환자들은 사망 2개월을 앞두고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한다"며 "치유 가능성이 없는 시기에 생명보조장치를 하며 생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은 죽음의 과정을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삶의 질을 위한 활동
뉴질랜드 로이스톤 센터 립비 스메일즈 박사는 말기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의료진과 가족이 환자의 성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종을 앞둔 환자도 애무와 섹스 등을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대병원 마취과 백승완 교수는 "임종을 앞둔 말기 암환자에게 부인과의 섹스를 허락한 적이 있다"며 "그 환자는 '이제 여한이 없다'는 행복한 미소 속에 3일 후 숨졌다"고 소개했다.
영국 런던대 로버트 던롭 교수는 "말기 암환자에겐 물과 영양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무조건 포도당 주사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영양제 등을 자주 투여하면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심재용 교수는 "탈수 상태에서 영양을 공급하면 암세포를 붓게 만들어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며 "환자의 증상과 요구에 따라 투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구용 모르핀 도입을
전문가들은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환자의 통증관리를 위해 속효성 경구용 모르핀이 도입돼야 한다. 값이 싸고 복용 후 15분이면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까다로운 마약법 때문에 도입이 차단돼 있는 실정이다.
둘째, 의료보험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경식(강남성모병원 종양내과) 이사장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대만, 홍콩 등도 의료보험에 포함하고 있다"며 "호스피스 병동이 운영되려면 중환자실에 못지 않은 시설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일반 진료와 똑같은 보험수가가 적용돼 국내 병원들이 도입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셋째, 호스피스 전문의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영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에서는 호스피스 전문의가 배출돼 전문적인 진료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제도적 뒷받침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고재학 기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