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최후 승리자는 누구일까?인텔이 디지털 기기와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확장PC(Extended PC)’를 구체화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닷넷(.net) 프로젝트를 선포하는 등 미국의 IT리더들이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MS의 한국지사인 ㈜마이크로소프트 고현진(高賢鎭ㆍ48) 사장은 “모든 IT업계는 결국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대세, 즉 통합과 호환의 시대로 갈 것이고 누가 미래의 표준을 제시하는가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고 사장은 이를 위해 미래의 닷넷 시대를 이끌 10만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율곡 선생이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것처럼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다.
닷넷은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컴퓨터 환경이다. 닷넷에서는 소비자들이 소프트웨어 CD롬을 직접 사서 이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 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쓰고 이용료를 내는 방식이다.
고사장은 도스와 윈도엔 뒤쳐졌지만 다가오는 닷넷 시대는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욕에서 10만 닷넷 정병(精兵)을 길러내기 위한 심층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커뮤니티인 데브피아(에는 벌써 12만명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S 본사의 첨단 소프트웨어와 관련 서비스를 한글화해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우리 소프트웨어업계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발전을 위한 IT업계 지원 및 기술이전 활동과 기업의 전산환경 개선을 위한 컨설팅 업무 등도 하고 있다.
1998년 518억원을 기록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액은 고 사장이 맡은 99년에는 1,071억원, 2000년에는 1,602억원으로 급신장했다. 이로 인해 99년과 2000년 2년 연속 경쟁사인 오라클을 제치고 매출액 1위를 달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올해도 월 평균 200억~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정부의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이 있었던 3월에는 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눈에 강단(剛斷)이 느껴지는 고 사장은 전형적인 지휘자형 최고경영자(CEO). 그는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솔로이스트(Soloist)들을 한데 모아 서로가 불협화음을 내지 않도록 조율하며 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가 99년에 사장으로 취임한 뒤 했던 첫 업무가 직원들의 신상명세서를 모아 파일로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이 파일을 토대로 하루에 한 두명씩 개인면담을 하기 시작해 지금도 매일 30분 이상을 직원과의 미팅에 할애함으로써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줄 수 있도록 지도한다.
고 사장은 모험을 즐긴다. 소위 ‘KS’라고 불리는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당시 최고 엘리트 코스인 한국은행에 입사했지만 순탄한 길을 버렸다. ‘관료적이고 형식적인’ 금융기관에서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84년 한국IBM으로 옮긴 후의 생활에 대해 고 사장은 “개인의 자율과 책임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금융기관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며 IT 분야 전문지식과 실전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미래를 이끌 새로운 헤게모니가 될 것임을 확신한 그는 94년 하드웨어 중심인 한국IBM을 떠나 소프트웨어 주력기업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거쳐 9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자리를 잡았다.
고 사장은 ‘일류’와 ‘최고’를 수식어로 달고 다니는 사람 같지 않게 소탈하고 겸손하다. ‘나에게는 냉정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그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대기업의 체계화된 시스템과 벤처기업의 도전정신을 간직한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끄는데 최적의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고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명실공히 한국 기업으로 만드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300여명이 넘는 직원 중에는 외국인이 단 한명도 없지만 아직 기업이 진정으로 현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정한 ‘한국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MS의 현지법인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국내 800여개의 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MY 키워드
▽천재도 없고 요행도 없다
모든 사람들을 보통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조직에서 하나의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에게 전달될 때까지는 무수히 많은 부서와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되므로, 여기에서는 개개인의 우수한 자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모든 부서가 하나의 팀으로서 합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성과를 놓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객 입장에서 개선할 점을 찾는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계속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Inch by inch.
올해 초 직원들이 새해인사를 나누는 시무식을 가졌다. 이 때 고 사장이 직원들에게 영화 한편을 보게 했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미국 미식축구영화 'Any Given Sunday'였다.
그 영화에서 감독인 알 파치노는 선수들에게 시합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큰 성과를 거두려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자신이 가능한 분야에서 1인치씩만 성취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국내외 경기 침체로 인해 다소 긴장된 분위기에서 신년 시무식을 맞이했던 직원들은 이 영화를 보고 안도감을 느껴 더욱 분발하게 됐다고 한다.
▽10만의 개발자를 양성하라.
고 사장은 "한국 IT산업의 장기 발전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개발자 육성"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교육열이 높아 이미 10만명의 개발자를 양성했지만 어떻게 이들을 정예 개발자로 키워나가느냐가 남은 과제다.
지난해 6월 빌 게이츠 MS회장이 닷넷 프로젝트를 제창하자, 고 사장은 "우리나라가 도스와 윈도에서는 출발이 느렸지만 닷넷에서는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개발자 양성을 독려하고 있다.
■고현진 His story
◆1953년 서울 출생
◆경기고(1973)-서울대 상대 졸업(1980)
◆한국은행(1981~1983)/한국IBM(1984~1994)/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상무(1994~1998)/㈜마이크로소프트 기업고객부 본부장/대표이사 사장 취임(1999.11)
◆취미: 골프(핸디 10)
◆가족: 부인과 1남1녀
◆이메일: hjko@micro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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