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황종연(41)씨는 수상평론집 '비루한 것의 카니발'(문학동네 발행)에서 비평 행위를 '도박'이라고 표현했다.'지나간 시대의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작업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작품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바라보는 비평은 불안하다.
현재진행형의 문학에 대한 평가의 준거가 철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 "문학 작품이 산출하는 새로움을 알아보고 명명하는 일은 아무리 심원한 명상을 토대로 삼는다 하더라도 불안정하고 모험적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도박이다.'
그는 수상평론집에서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1990년대 작가들을 도박 상대로 선택했다.
'비루한 것의 카니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은 그러나 단단한 문학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비루한 것'은 비평가 마이클 안드레 번스타인이 설명한 '비루한 영웅' 의 인물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카니발'은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레스크의 전통'에서 따왔다. 황씨는 90년대 작품을 아우르는 분석틀로 이 두 가지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한 패덕자, 범죄자, 미치광이를 '비루한 것'으로 묶었다.
이 비루한 것들이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고 기성 질서에 대한 반란을 꾀하는 '카니발'을 벌인다는 게 황씨의 해석이다.
그가 사용한 잣대로 90년대 작품을 들여다 보니 장정일과 최인석, 백민석과 한창훈처럼 '도무지 비슷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작가들이 나란히 세워졌다.
그는 이것을 선배 비평가의 표현을 인용해 "이질적인 문학 텍스트 사이에서 평형 잡기"라고 말한다.
평론은 흔히 글쓰는 이의 자족(自足)에 머물기 쉬운 위험성을 갖고 있다. 황씨의 비평은 그러나 듣기 좋은 음악처럼 문체가 경쾌하면서도 짜임새가 튼튼하다.
비평은 보통 사용하는 용어부터 까다롭고 난해해서 '작품보다 해설이 더 어렵다'는 비아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황씨의 글이 소설처럼 읽기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신선한 시각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가령 평론 '개인 주체의 귀환'에서 채영주와 구효서 박상우 신경숙 등 젊은 작가들은 80년대 소설을 지배했던 리얼리즘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요즘 사람들'로 분류된다.
리얼리즘을 탈각했다는 것은 그만큼 견고한 서사가 약해졌다는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황씨는 그러나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가 기계적인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 개인의식과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쪽으로 전환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동시대의 작가들을 상실된 개성을 회복시킨 사람들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다.
문학이 어느 때보다도 위기를 맞고 있다는 데 그는 공감한다. 적극적인 관심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문자(文字)문화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언어는 정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규정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언어가 풍요로워지면 삶이 부유해진다.
거꾸로 언어가 빈약해지면 삶은 가난해진다. 문학의 의무는 언어의 감각을 키우고, 언어 체험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절실한 욕구가 남아 있는 한 문학은 생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가 보는 현재는 암울하다. 교육제도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문학은 '지식, 정보의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의 감동을 깨닫게 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인간 활동의 차원에서 문학에 접근하려는 대중매체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루한.'이 첫 평론집이긴 하지만 그의 현장비평 경력은 적지 않다. 92년 등단한 뒤 많은 현역 작가들의 글쓰기를 놓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평가에 지치지 않는 필력을 과시했다.
평론집에 담긴 20편의 글은 발표한 것 가운데 90년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글을 추려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저 '비평모음'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에 따른 조립이다.
그는 "이문구와 서정인 이문열 등 중진 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따로 모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 1960년 서울 출생
▦ 동국대 국문과ㆍ대학원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수학
▦ 1992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반근대의 정신' 발표 등단
▦ 동국대 국문과 교수,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 소천비평문학상(1993), 고석규비평문학상(1997) 수상
김지영 기자
kimjy@hk.co.kr
■심사경위
'팔봉비평문학상'이 10년의 연륜을 훌쩍 넘어 12회째 수상자를 내게 되었다.
역대 수상자들인 김현 김윤식 김치수 김우창 김병익 김주연 염무웅 구중서 최원식 김화영 정과리에서 알 수 있듯, 이 상은 11년 동안 최고 수준의 평론가들에게 수여됨으로써 상의 권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12회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한 작업은 지난 1년간의 평론집 목록을 작성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목록을 바탕으로 심사위원으로 김윤식 이상섭 김병익 최원식 네 분을 위촉함으로써 심사가 본격화하였다.
4월 23일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제1차 본심에서는 위원들이 김윤식 교수를 위원장으로 호선한 후, 심사요강에 따라 몇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순수평론집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 이론탐구나 학술적 연구에 치우친 평론은 가급적 수상에서 배제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같은 원칙 하에 7권의 평론집을 2차 본심에서 논의할 대상으로 선정했다.
5월 2일의 2차 본심은 1차의 진지한 분위기와 달리 너무도 손쉽게 수상자를 결정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일곱 사람의 평론집을 대상으로 난상토론을 벌이며 수상자를 좁혀가던 위원들은 탄탄한 비평적 안목을 지닌 젊은 평론가와, 기억할 만한 비평적 업적을 이룬 권위 있는 평론가를 두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정작 위원들이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을 때는 두 사람 째에 이르러 수상자가 결정되었으며 곧 이어 만장일치가 이루어졌다.
첫번째 평론집임에도 빼어난 교양과 지식으로 경탄할 만한 작품 해석을 펼쳐 보인 황종연씨를 수상자로 결정함으로써 팔봉비평문학상은 21세기 벽두부터 새로운 수상 경향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정선
■심사평
심사위원회는 1차 회동에서 먼저 해당기간에 출간된 평론집 가운데 현실성과 문학성 양면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비평가에게 수여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면서, 되도록 40대 이상에서 찾고, 중복 수상은 회피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실무진에서 마련한 대상목록을 점검하던 차, 대가급의 평론집을 대상에 포함하느냐 여부를 논의, 심사 바깥에 두는 것이 예의라는 점에 동의하고, 2차 심사에서 집중 검토할 7권의 평론집을 선정하였다.
2차로 모인 심사위원들은 각기 2권의 평론집을 추천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자유토론하여, 첫 평론집 '비루한 것의 카니발'을 펴낸 소장평론가 황종연을 제12회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로 삼는 데 합의하였다.
심사위원회는 그의 뛰어난 문장력에 주목하였다. 사무적이라 너무 싱거운 평론이나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읽어내기 어려운 평론이 횡행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2차 문서로서의 겸허한 위치를 자각하면서도 나름의 독자성을 확보한 읽을 만한 평론을 써내는 능력이 우선 귀하다.
또한 풍부한 학구(學究)가 문장력을 받치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하였다. 안팎의 비평 담론들에 대한 예민한 섭취를 통해 자신의 입론(立論)을 섬세하게 세워나가는 그 진지한 자세에서 탁마된 문장력이기 때문에 재주로 떨어지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풍부한 학구와 유려한 문장력을 당대 문학이 발신하는 새로움을 혼신의 힘으로 파악해 나가는 데 투입할 줄 아는 비평적 현장성이다.
자신의 비평적 출발점으로 되는 90년대와 그 문학을 곡진하게 이해하기 위한 탐색을 일정한 가설적 구도 아래 일관되게 추구한 이 평론집은 그래서 동시대 문학에 봉헌된 최고의 오마주(경의ㆍ敬意)다.
한계도 지적되었다. 90년대 문학의 새로움에 지펴서 89년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새로운 모험에 들어선 민족문학, 또는 민중문학에 대한 이해가 충실치 않다는 점이다.
90년대의 '신세대' 문학의 의의와 한계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도 그와 단층을 이루는, 그럼에도 연속ㆍ비연속의 복잡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 80년대 문학에 대한 비판적 섭수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 편향이 그의 평론에서 비판이 약화하는 것과 맞물리는 지도 모른다. 뛰어난 해석에 비해 냉철한 평가는 드물다.
비판이 비평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 새기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의 비평이 그 위의(威儀)에 걸맞은 단계로 진입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이상섭 김윤식 김병익 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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