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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白石의 후 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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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白石의 후 반생

입력
2001.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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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정지용, 북의 백 석'이라 일컫던 서정시인 백 석(白 石ㆍ본명 白夔行)이 근래까지 북에 생존했던 사실이 밝혀져 문단의 화제다.작가 송 준씨가 최근 공개한 백 석 부인(이윤희ㆍ생존시 76세) 편지에는 남편이 83세 때인 1995년 1월 양강도 삼수군 협동농장에서 병사했다고 적혀있다.

59년 평양에서 그 곳으로 이주해 간간이 시를 쓰다 62년 활동이 중단된 사실을 근거로 이 무렵 사망한 것으로 믿어 왔으나, 삼십 수년을 더 살았다는 얘기다.

■아들을 시켜 중국 동포에게 쓴 편지는 '붉은 편지' 사건으로 숙청당해 핍박 속에 생을 마감한 천재시인의 후 반생을 짐작케 해 준다.

붉은 편지 사건이란 당성이 약한 문인들을 지방 생산현장으로 쫓아낸 북한 문단 숙청사건. '쫓겨 났다' '추방 됐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았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만년의 고난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족사진에 찍힌 70대 중반의 모습에도 곤고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광복 후 20년 가까이 북한 땅에서의 문학활동에도 고뇌의 흔적이 엿보인다.

오리지널 평안도 사투리를 즐겨 시어로 쓰던 그가 45년 고향 정주에 돌아간 이후 시작활동을 끊은 것도 정치현실과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

월남하지 않고 북에 눌러앉은 것은 남과 북 어느 쪽 정치현실도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다.

한동안 번역에만 몰두하던 그는 50년대 중반 아동문학가로 변신했다가, 숙청 직후 갑자기 시필(詩筆)을 잡는다.

■59년 조선문학에 발표한 작품 <전별> 에는 "둘레둘레 둘려 놓인 공동식탁 위에/ 한없이 아름다운 공신주의의 노을이 비낀다"는 표현이 있다.

처녀들에게 도리깨질을 배우고, 달밤에 김매기 연습을 해야 했을 만큼 곤고했던 숙청자에게 공산주의 노을을 찬양할 창작욕구가 우러났을까.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만년이 가슴 아프다. 당신의 시를 좋아하는 남쪽 사람들이 백석전집을 여러 권 펴내고, 한 때의 정인이 남기고 간 백석문학상이 이땅에 좋은 시의 밭이 되었음을 알기나 할까.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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