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에서는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와 의원, 학계 인사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보복금지법안 토론회가 열렸다.정치보복 금지법안은 정권교체 또는 정치변동 상황에서 보복성 수사나 인사상 불이익 등 정치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소속 발표자와 정치학을 전공한 한 대학교수는 그 같은 취지에 입각해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다.
반면 법학을 전공한 2명의 발표자는 입법취지에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정치보복의 명확한 개념 규정이 불가능에 가깝고 법체계 상의 혼란 초래, 법적용 과정의 정치적 논란 등을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1997년 대선 때 정치보복금지와 차별대우금지 등을 요지로 한 3금법 제정을 공약한 일이 있다.
"DJ가 집권하면 대대적인 정치 보복을 가할 것"이라는 흑색선전과 일부 보수층의 불안심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회창 총재가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을 들고 나온 것도 김 대통령의 그런 전략을 일정부분 벤치마킹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연초에 '이 총재가 집권하면 단군 이래 유례없는 보복이 이뤄질 것'이라는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의 '악담' 이 아니더라도 이 총재에게서 '칼 바람'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총재와 한나라당이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을 적극 이슈화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직접적인 목적은 현재 자신과 한나라당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이 총재를 괴롭혔던 북풍 세풍 총풍 안풍 등 일련의 풍(風)시리즈와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치적 탄압이자 보복이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치보복금지법 추진 논리는 정치인과 권력의 비리는 절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비약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정권 하에서 국세청의 고위 간부가 기업들로부터 직위를 이용해서 수 백억 원의 대선자금을 조성ㆍ지원해 줘도 처벌하기 힘들 것이다.
국정원이 북한을 움직여 여당후보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획책해도, 국가예산을 총선자금으로 전용하거나 혹은 국정원 계좌를 정치자금의 세탁창구로 활용하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정치보복 딱지를 붙이면 그만이다.
이 정권에서 국기적 범죄를 저질렀거나 앞으로 저지를 생각이라면 지금부터 야당 총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다음 정권에서 무사할 수가 있다. 그를 처벌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테니까.
4ㆍ13 총선 때 방송 카메라 기자들에게 향응 접대를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갖은 이유로 공판참석을 회피해 온 정인봉 의원이 이날 열린 공판에도 참석하지 않고 지정토론자로 토론회에 참석, 정치보복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또 무엇인가.
그가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면 정치보복이 아닌 정치인 처벌이 과연 존재할까. 대법관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이회창 총재가 오죽했으면 그럴까 하는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정치논리로 법체계를 훼손한다는 비난으로 그의 '법대로' 이미지에 또 한번 흠집이 가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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