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들이 모였다. '과중채무자들의 모임'이라는 단체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들은 스스로도 재기의 노력을 펼쳐야 하지만 사회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내걸고 있다.지난해 2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몇몇이서 신세한탄을 하던 게 시작이었으나 어느새 회원이 늘어나 지금은 2,300명이나 된다.
오프라인 모임도 몇 차례 갖더니 4월에는 단체이름으로 '신용불량공화국'이라는 책을 냈으며, 이자제한법을 부활해야 한다는 법률제정을 청원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대표인 석승억(石承億)씨는 이런 움직임을 "명실상부한 시민단체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말했다.
올해 서른 셋인 그 역시 카드 빚 280만원을 제 때 갚지 못해 석 달 동안 교도소에 갇히기도 했던 신용불량자이다.
_신용불량자들의 재기를 사회가 도와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사회나 제도의 문제라는 뜻인가?
"그런 건 아니다.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는 당사자의 책임이 거의 전부겠지만 재기를 위한 그들의 노력을 사회가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신용불량자가 되면 취업이 안 된다. 취업이 되어야 빚을 갚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취업을 못하니 빚을 못 갚게 되고, 신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햇볕정책이 필요하다."
_실업난이 심각한데 신용불량자들에게 일자리가 돌아올까?
"실업난이 심각하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세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째 신용불량자는 고용비용이 적게 든다. 능력보다 월급을 덜 줘도 일을 한다는 말이다.
둘째 신용불량자를 고용하면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돈을 돌려 받는 기회가 빨리 올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돈이 있어야 빚을 갚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신용불량자는 잠재적 사회불안세력인데 이들을 신용이 나쁘다는 이유로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사회적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_말은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런 논리에 승복할 것 같지 않다. 5월1일 시행된 신용불량자에 대한 사면조치에 대해서도 시장경제원리를 벗어나는 조치라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신용불량자가 많으면 신용우량자가 피해를 본다. 신용불량자들 때문에 제도권 금융의 금리가 높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나?
대손충당금이란 게 결국 신용우량자가 부담하는 것 아닌가? 또 공적자금이란 건 뭔가? 기업이 망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부실한 기업에 돈을 대주는 것 아닌가? 신용불량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그런 것 아닌가?"
_신용불량자는 몇 명이나 되나?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불이행으로 은행연합회에 등재된 사람만 330만명이다.
그러나 휴대폰요금을 못 냈거나, 백화점카드 체불자, 기업체 할부금융 연체자 등을 합하면 500만명이 넘을 것이다.
이중에는 카드회사나 휴대폰 회사의 현혹적인 광고만 보고 가입했다가 비용을 감당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젊은이들이 많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원조교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떻게라도 돈을 만들어 빚을 갚으려다 보니 원조교제에 나서는 것이라고 본다."
_과중채무자들의 모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카드빚 때문에 3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집행유예 1년6월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나왔는데 무얼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97년 무렵인데 취업도 안되고 장사를 하려해도 몇 백만원도 만들 수가 없었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 그 때 '찬밥'이라고 부르는 한 목사님을 만나게 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신용불량자의 모임을 만들어 함께 재기하는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동네 PC방 컴퓨터를 이용해 내 처지를 알리고 모임을 만들자는 글을 올린 게 계기가 됐다."
_과중채무자는 무엇이고, 신용불량자는 무엇인가?
"원래 이 모임을 시작할 때는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신용불량자라는 말이 우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깊게 하는 것 같아 '과중채무자들의 모임'으로 바꾸었다.
한 번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히면 돈을 못 갚았다는 사실보다는 기본적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 가족과 친구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린 사람,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 회원 중에는 인간적 도리를 지키려다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많다.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섰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하는 가족에게 빌려주었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단지 채무가 많을 뿐 원래부터 신용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뜻에서 과중채무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불러주면 좋겠다."
_사채업자들의 횡포에 대한 비난이 높다. 그런데 사채업자들을 단속하면 정말 돈이 급하지만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돈 빌릴 기회까지 막는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용불량자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100만원을 갚기 위해 200만원을 빌리는 걸 무서워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빚만 늘어나고 사태는 더 나빠진다."
_아까 이 모임이 시민단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빚진 사람들의 단체가 시민단체라니 이해가 잘 안 된다?
"미국에 CCCS라는 비영리 시민단체가 있다. 채무자들의 권리를 대행해주는 단체다.
우리나라에는 빚을 대신 받아주는 추심회사 등 채권자들을 대리하는 기관은 있지만 채무자의 권리를 대행하는 단체는 없다. 우리 모임을 미국 CCCS처럼 만들고 싶다."
_CCCS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인가?
"미국 기업들은 채무자를 직접 압박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추심회사를 이용해도 비용이 많이 들고, 기업이미지도 나빠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나? 채무자에게 언제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등 일방적으로 압박하다 보니 서로 감정이 나빠져 받을 수 있는 돈도 못 받는 일도 많다.
CCCS는 채무자의 편에 서서 취업기회를 만들어주고 변제 계획을 함께 세운 후 계획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 등의 방법으로 양자 사이의 갈등을 미리 예방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CCCS가 이에 필요한 비용을 기업으로부터 조달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CCCS를 통하는 것이 채무자를 직접 압박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아서다.
CCCS 통계에 따르면 그 전에는 3년 이상 걸렸던 신용불량자들의 부채상환이 이런 방식을 통하니까 2년 만에 상환됐다고 한다. 정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 아닌가?"
_과중채무자들의 모임을 미국 CCCS처럼 만들겠다는 건데 우리나라서는 쉬운 일 같지가 않다.
어떤 복안이 있나?
"지금까지 해온 일과 앞으로 하는 일이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모임이 중심이 되어 서민금융생활보호운동본부라는 걸 만들어 이자제한법 부활을 위한 입법청원을 냈다.
5일에는 부산에서 과중채무자 모임을 가졌다. 첫 지방 활동인데 이를 시작으로 지방에 있는 과중채무자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질 것이다.
이런 모임에서는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상담활동을 하면서 재기를 위한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쓰도록 하자는 캠페인도 벌일 생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신용불량자들을 방치하면 그 에너지가 사기나 절도 등 부정적인 데로 흘러 들어간다. 그걸 막자는 캠페인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신용불량자가 안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한때 카드빚 못갚아 교도소행 이젠 대학원서 '시민운동' 공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약간 하다 스물 여섯 살 때 차린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식당을 개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식당에 필요한 모든 걸 일괄 공급하면 돈이 더 되겠다는 생각에서 식당창업컨설팅회사라는 걸 차렸다.
그러나 경험없고 돈없는 젊은 사업가 대부분이 그렇듯 얼마 못 가 회사간판을 내려야 했다. 문을 닫을 때 사채 1,000만원과 카드빚 280만원이 있었는데 사채업자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 2년 동안 도망을 다니다 카드빚을 못 갚았다.
280만원을 안 갚은 게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죄가 되는지도 모르다가 불심검문에서 붙잡힌 후에야 자신이 카드회사의 형사고발로 기소중지자가 된 걸 알았다.
"2년 동안 피해 다니면서 편하게 잔 적이 한 번도 없다. 겨우 잠들어도 가위에 눌리고, 깨보면 다시 세상과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뜬 눈으로 지샜다.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아니, 자는 게 아니라 술기운을 빌어 기절했다가 깨는 생활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한 번은 한 자리에서 소주 7병 반을 먹고 난 후에야 '기절'한 적도 있다. 그런 생활이 일단 끝나니 마음은 편했다. 술에 취해 육교에서 뛰어내리는 등 자살도 세 번이나 하려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이런 경험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쌓은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올해 서른 셋,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사회에서 소외된 2,300명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을 무난히 이끌고 있다. 그는 지금 경희대 NGO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시민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금세 가정이 붕괴된다.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무능한 아버지, 무능한 남편이 되면서 자녀들이 탈선하고 가장이라는 지위를 잃게 된다.
가족과 주변, 사회에 대한 책임감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곧 자신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그걸 잊기 위해 술에 빠지고 그게 또 가족과 주변의 불신을 깊게 한다. 정말 못할 짓이다. 나도 결혼할 여자가 있었는데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모든 걸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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