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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최후" - '왕건' 궁예죽음장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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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최후" - '왕건' 궁예죽음장면 촬영

입력
200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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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은 숙연했다. 궁예가 최후를 맞은 KBS1 TV '태조 왕건' 120부를 촬영한 4일 경북 문경새재 용추계곡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모두들 흐트러짐 없이 한 '영웅'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5월 초입 주흘산의 초목은 옅지도 진하지도 않은, 그지없이 산뜻한 초록빛이었다. 신록이 가장 좋은 때를 촬영일로 잡았다. 가뭄인데도 계곡에는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제법 넓고 편평한 바위 위에 안주는 없이 술병과 잔 몇 개만이 달랑 놓였다.

"별 생각 없이 담담했는데, 이렇게들 관심이 많으시니 감회가 더합니다."궁예, 김영철(50)은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잠을 설쳤는지 눈빛은 형형했지만 약간 핏발이 서 있었다.

금빛 곤룡포와 화사한 신록에 대비되어 그의 거무죽죽한 낯빛은 더욱 음울하다.

곁에는 은부(박상조)와 장수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칼을 들고 서 있었다. 궁예는 술잔을 기울이며 짙은 회한을 토로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이 길지 않은 대사를 읊으며 김영철은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쳐냈다.

대본에는 없는 부분이다. 대사에 몰입하다 보니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애꾸눈이 되어 버린 신라의 왕자, 그 불운한 생애와 더불어 1년 6개월을 궁예로 살아온 만감이 교차한 것이다.

그는 촬영 중간중간 연거푸 신발 틈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 휴대폰과 담배, 잡동사니를 넣어둔다고 한다.

카메라가 그에게서 비켜설 때마다 구경꾼들은 기다렸다는듯 환호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때마다 김영철은 여유만만하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으로 '대왕'의 풍모를 과시하는 듯했다.

계곡 아래쪽에서는 왕건의 군사가 까맣게 모여 있다. 왕건(최수종)은 "함께 가시오소서. 편히 쉬실 곳을 마련했나이다"라며 궁예를 설득한다.

군주로서는 어떤 모습이었든, 자신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보인 '형님'궁예에 대한 예우다. 하지만 궁예는 "아우, 부디 성군이 되시게."라는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은부로 하여금 자신의 목에 칼을 휘두르게 하여 최후를 맞는다. 궁예의 최후는 20일 방영된다.

"궁예는 역사상 가장 자주적인 군주"

■궁예의 인물론

"역사 왜곡이라기보다는 재해석이지요."(김종선 PD)

'고려사실록' 등 사서에는 궁예의 죽음이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극중 결말에 대해 "왜 역사를 마음대로 뜯어고치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록은 왕건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억측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한 삶을 살아온 영웅이 그처럼 비루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 최후를 영웅답게 장식했다.

궁예는 드라마 '태조 왕건'(총 184부)으로 급부상한 영웅이다. 미륵관심법에 미친 해괴한 군주로 남아있는 역사와는 달리 '태조 왕건'의 궁예는 왕건보다도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호걸이었다.

김 PD는 "궁예는 국호를 '태봉' '마진'등으로 바꾸며 끊임없이 북벌의 의지를 펼친, 역사상 가장 자주적인 군주"라고 말한다.

제작진은 이처럼 궁예를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과연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혼란기에는 궁예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비전이 필요하지만 안정기에는 이상주의보다는 사회적 가치의 적절한 배분이 오히려 더 절실하다.

왕건은 고구려의 후손이 중심이 된 호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궁예는 철원 천도, 아지태를 비롯한 청주인 기용 등을 통해 이들 호족세력을 제압하며 북벌의 의지를 폈지만 결국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호족연합'을 통해 안정적 리더십을 구사하던 왕건에 의해 제거당한 것이다.

드라마도 사서처럼 미륵관심법을 동원한 무차별한 살육, 그로 인한 민심 이반을 여지없이 그려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어 그대로 담아냈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재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궁예의 죽음을 영웅답게 그림으로써 그 아쉬움을 덜었다고 할까.

앞으로 '태조 왕건'은 견훤에 보다 비중을 두게 된다. 견훤은 아버지 아자개와의 끊임없는 반목으로 고통을 겪고 왕건은 그 부자 갈등을 이용해 아자개를 포섭, 상주 지역을 손에 넣는다. 이를 통해 왕건의 지도력을 부각시키며 통일에 한발짝 다가선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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