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는 아무래도 세종 때의 이순지(李純之ㆍ1406~1465)를 먼저 꼽을 만하다.그런데 이 대단한 천문학자가 딸을 잘못 두어 망신스러웠다고 당시 실록은 전한다. 중요 인물의 죽음에 대해 조선 시대의 실록은 졸기(卒記)를 남기는데, 1465년(세조 11) 6월 11일 '세조실록'에는 제법 길게 그에 대한 졸기가 실려 있다. 그의 많은 대표적 업적을 나열한 다음 그의 딸 이야기가 간단히 소개된 것이다.
1427년(세종 9) 과거에 급제한 이순지는 승문원의 교리, 봉상시 판관, 좌부승지, 서운관 판사, 중추원 판사 등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치며 세종대 대표적 천문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규장각에는 그가 쓴 여러 책이 전해지는데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과 '천문유초(天文類抄)'가 대표적이다.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조선의 역법이 부진함을 걱정하여 과거 급제자 가운데 천문학 연구에 정진할 학자를 골랐는데 여기 이순지가 선발되었다.
세종은 그에게 천문기구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간의(簡儀)와 규표(圭表) 등 당시 경복궁 경회루 연못 둘레에 설치했던 것이다.
또 같은 장소에는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와 옥루를 각각 설치한 보루각(報漏閣)과 흠경각(欽敬閣)도 있었는데 이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고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대에 처음 고안된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비롯한 몇 가지 해시계도 그의 공이다. 사실은 세종 때 우리나라에 맞는 역법 '칠정산(七政算)'이 완성됐는데 이것이 그의 대표적 업적이다.
그런데 그를 망신시켰다는 딸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의 딸은 젊어서 혼자가 되어 사방지(舍方知)라는 종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여성 차림의 종이 사실은 남녀 양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대단한 섹스 스캔들이 되어 후세까지 많은 사람들이 야사에 기록할 정도였다. 이 기록에는 사방지를 양의(兩儀), 즉 양성(hermaphrodite)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드물지 않은 현상이어서 최근에는 한 남성이 성전환수술을 해 여성 모델로 활동한다 해 화제가 된 일도 있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이는 대단한 변괴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이 실록의 대목에는 그의 아들 6명은 이름까지 기록했지만, 그 망신스러웠다는 딸 이름은 남기지 않았다.
정부부처에 여성부까지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듯하다.
박성래(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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