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의 대학로를 걷다가 오래된 제과점 안이 비어있는 것을 봤다. 곧 폐업을 하려는 것이었다.처음 한국에 온 4년전 건물과 상점들을 그렇게 자주 짓고 부수고, 재건축에 재개발하는 이곳 풍경이 내겐 무척 낯설었다.
물론 한국과 호주는 인구와 개발 속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호주에서 이처럼 잦은 풍경 변화를 목격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브리스번시는 인구 150만명의 대도시지만 그곳에서는 아주 작은 개발만 있어도 '쿠리어 메일'같은 큰 일간지에 보도된다. 하지만 웬걸. 고향에서 신문에 날 정도의 변화가 서울에선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비슷한 경험들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 등하교길의 이정표는 거리의 책방, 문방구, 푸줏간, 구두가게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빠른 변화는 때로 상실감까지 안겨준다.
고향에 갈 때마다 시청의 대형시계나 탑 처럼 친숙한 건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안도감이 커지는 것은 이런 서울에서의 경험 때문이지 모른다.
몇 달 전엔 내가 사는 신촌의 집 앞 골목에서 마음씨 좋은 중년 내외가 운영하던 '부부 상회'가 문을 닫았다.
나는 셔터를 내린 그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아주머니가 아프신가, 외아들이 대학을 졸업해 더 이상 가게를 열 필요가 없어진걸까, 이 가게는 다른 가게로 바뀔까 하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과 동시에 한 가지 걱정도 생기는 데 그것은 이 동네 아이들은 과연 집을 잘 찾아 갈까 하는 괜한 노파심이다.
내 경험에 비추면 아이들에게 동네와 골목은 그들 세계의 전부이다. 때문에 친숙한 가게가 하나 없어지는 것은 컴컴한 바다에서 등대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친숙하고 익숙한 풍경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무관심은 더 이해할 수 없다. 이방인인 나도 4년 전과 달라진 서울 풍경에 상실감을 갖게되는 데 말이다.
그런 느낌은 극장이 헐린 자리가 주차장이 되고, 90년이 넘게 서울 사람들의 벗이었던 단성사가 바뀌어 그 자리에 17층짜리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긴다고 해도 크게 주목 하지 않은 언론과 사람들을 보면서 더 심해졌다.
서울에 있으면 과거나 전통에 대한 향수가 효율성이라는 괴물앞에서 사치와 허영이 돼버리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익숙한 풍경을 마음에 담아 두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간이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바로 그때다.
안타깝게도 요즘 서울 사람들에게 이런 '익숙한 풍경'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의 40, 50대가 근대화 이전의 낯익은 농어촌 풍경들을 삶의 자산으로 갖고 있는 반면 젊은 세대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부모들의 과도한 학구열과 입시 전쟁으로 비인간화한 환경 속에서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커가는 서울의 아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란 고작 고궁 몇 개 뿐이다.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미래를 꿈꿀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서울의 도시 계획자들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도시를 꾸미는 일을 더 이상 방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로부터의 교훈이야말로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하는 힘이며, 인생은 결코 텔레비전과 영화, 인터넷과 잡지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튜 로버트 스틸 ㆍ성균관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ㆍ호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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