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했던 것일까.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해온 제2차 금융구조조정이 지난해말 국민과 주택은행의 합병 발표를 끝으로 흐지부지될 조짐이다.
"추가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은행이 2~3곳 있다." "국내에서는 4~5개 정도의 은행만 남는 것이 적당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틈만 나면 '추가 합병'을 시사하는 이 같은 발언을 되풀이했지만 최근 1~2개월 동안 금융구조 조정과 관련한 일체의 언급을 삼가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여러 가지 합병 시나리오를 구상하다 노조 등의 반대로 잇따라 무산되자 금융 개혁을 사실상 접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 추가 합병 시계 제로
이기호(李起浩)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외환 및 기업은행 노조위원장과 간담회를 갖고 "재임 중에는 두 은행의 합병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노조는 최근 사내 전자게시판을 통해 전 직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이 수석과의 면담 결과를 공개했다.
두 은행 노조의 합병 반대 투쟁이 예상보다 거세지자 사실상 합병 논의를 중단키로 한 것.
이에 따라 정부측이 추가 합병의 유일한 보루로 여겼던 두 은행 합병은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대주주의 반대로 합병 일보 직전에서 '파혼'을 선언했던 한미와 하나은행은 새로운 합병 파트너를 모색하는 대신 독자생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미은행의 대주주인 칼라일측은 최근 노조측에 보낸 서한에서 "다른 은행과의 합병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신임 행장 영입 등 지배구조 개편은 합병 반대의 입장에서 독자생존으로 나가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미은행 고위관계자는 최근 "칼라일-노조와의 약속 등으로 최소한 연내에는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역시 알리안츠와 함께 연내 보험사를 만들기로 하는 등 자체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박차를 가하며 당장은 합병에 연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은 "한미은행과의 합병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본다"며 "하나은행은 독자적인 금융그룹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며 내년 이후에나 상황을 보아가며 다른 은행과의 합병도 검토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 개혁 의지 후퇴했나
정부가 '대형화 = 금융 개혁'이라는 논리로 출발한 제2차 금융구조조정의 성과물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강제로 우리금융그룹에 편입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국민과 주택은행의 합병이 유일하다.
"시너지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합병은 오히려 금융 개혁에 장애 요인"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일축하며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던 것에 비하면 성과물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물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은행의 경우 해외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면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돼야 할 처지이고, 외환은행도 경영정상화에 차질이 생길 경우 또 한번 합병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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