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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EU 대표단 방북과 북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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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EU 대표단 방북과 북미관계

입력
200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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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국 유럽연합(EU)의 의장국 스웨덴 페르손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였다.분단 이후 서방 국가 정상으로는 최초 방문으로 북한의 대외 관계 개선에서 커다란 진전을 뜻하는 외교 행사였다.

방북 이후 서울에서 밝힌 페르손 총리 발언대로 EU가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서방국가들의 대북 자세가 미국 일변도가 아님을 외교적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사실도 이미 한반도 정세가 과거 냉전적 대립 시기와는 크게 달라져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번 EU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북미 협상에서 약속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가 2003년까지 유효하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에 대한 협상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또한 6ㆍ15 공동선언의 이행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 의지도 밝히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미국 다음으로 서방 세계의 다른 한 축을 형성하는 EU를 통한 국제적 약속이란 점에서 큰 비중이 실린 것이며 대북 협상을 주저하고 있는 미국에게는 적지 않은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제5차 장관급 회담 중단 이후 남한 내에서 증폭되었던 제2차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대한 의심도 불식시키고 있다.

EU-북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위원장의 발언은 이러한 적극적인 대외 관계 개선 의지 못지 않게 미묘한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

남북대화를 부시 행정부의 미국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끝날 때까지 미루고 있다고 한 점이다. 이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이 미국의 대북 협상 자세와도 연동될 것임을 함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불확실한 대북 정책이 남북대화를 지연시키는 요인임을 직접 드러낸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미국과의 협상 여하에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의 성격에 영향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대북 협상에 계속해서 부정적이라면 한반도 평화 문제를 남북한 사이에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인일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핵ㆍ미사일 문제가 타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 선언을 해버리는 사태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

사실 클린턴 행정부도 페리 프로세스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는 배제시키다가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작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 속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협상 의제로 포함시킨 바 있다.

부시 행정부는 남북한 화해를 한반도 문제의 남북 주도 강화_미국 영향력 약화라는 단선적인 구도로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에 따라 북미 협상을 늦춤으로써 남북 화해를 견제하려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북미 관계에 진전이 없어도 다소 불안한 상태이긴 해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실현될 것이다.

당장 남한 내에 대북 강경 정책을 펴는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의 대한반도 영향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현재 한반도 문제의 바람직한 해법은 남북 화해, 북미 관계 정상화를 보완적으로 병행시키며 최적의 타협점을 찾는 데 있다. 여기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안보 이익도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관계를 무시하고 만일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 정책으로 선회할 때 미국에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남한 시민사회의 거센 대미 비판에 직면할 것이란 점이다.

EU 대표단 북한 방문과 동시에 발생한 김정일 위원장 아들 김정남 일본 밀입국 좌절의 외교 해프닝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만일 북미관계가 작년 10월 공동 코뮈니케 이후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진전되고 있었다면 김정남씨는 북일 수교를 타결할 특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구나 김정일 위원장이 총력을 기울이는 북한 IT 산업 분야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로 볼 때 남북 IT 협력과 북일 경제협력에 적지 않은 의의를 가졌을 것이다.

이번 밀입국 사건이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미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으로 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서동만· 상지대 교수 북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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