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3월23일 미국 유타대학의 폰스와 플라이스만 두 교수는 전 세계를 뒤흔든 상온 핵융합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1억 도가 넘는 태양의 내부나 수소폭탄의 폭발에서나 가능한 핵융합을 그들의 실험실에서 실현했으며 이제 인류는 무한정의 값싼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비싸진 휘발유를 주유소에서 사고 있으며 주부들은 전기료가 너무 올랐다고 불평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과학기사를 너무 쉽게 믿는 구석이 있다. 자기 동네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게 사실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레이저 광선으로 격추시킬 수 있다는 등등의 기사에는 -지구촌엔 굶어 죽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있는데도 - 수 천억불의 귀중한 자원을 그런 연구에 쏟아 붓는다고 해도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지금 사람들은 과거에 신이나 운명을 대했던 것처럼 자연법칙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왜곡하는 나쁜 사제들이 많은 것처럼 설령 과학의 법칙이 정말로 신성 불가침 하더라도 거기에 기생하는 과학 사기꾼들은 정리해야 할 것이다.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세계 몇 번째의 쾌거'이며 '수입 대체 효과'나 '특허 사용료 몇 억불' 등등의 기사가 모두 사실이었다면 우리 나라가 지금 같은 경제위기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관련 당사자들은 해외에서 밀려 들어오는 특허 사용료를 계산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상온 핵융합 사기 사건은 참으로 기가 막히게 북한의 김일성 종합대학에서도 성공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으며, 물론 이보다 앞질러서 남쪽에서는 잽싸게(?) 세계에서 상온 핵융합을 몇 번째로 실현했다며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버젓이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어떤 제재를 당했다거나 무슨 망신을 당해서 학계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그런 바람직한 말을 나는 들은 바가 없다. 그리고 물론 그들이 재벌이 되었다는 소리도 들은 바 없다.
1991년에 폰즈와 플라이스만 등은 자신들을 '과학 사기꾼'이라고 표현한 이탈리아의 한 신문사를 고소하였다.
그 사건을 담당한 이탈리아 재판관 3명은 '과학 사기꾼'이라는 신문사의 표현은 합당하며 원고는 신문사에 재판비용을 지불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원고 중 일부는 정신상태가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판사들의 의견까지도 덧붙여서 말해주었다.
이제는 신문을 읽는 독자들도 미국의 나사에서 발표하는 허블 망원경이 찍은 멋진 별나라 사진을 보면 예산 신청할 시기가 가까워지나 보다 하고 한번쯤은 속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신임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의 인터뷰 중에 연구비 투자대비 결과를 한번 따져봐야 하겠다는 말이 있다. 이 발언을 적극 환영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특허권 그 자체를 유지하는데 해마다 상당액수의 수수료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연구실적의 개수를 세는 데에나 사용되는 그런 특허들을 유지하는 비용까지도 세금으로 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비로 내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이제는 전에 모 언론사에서 연재했던 '그때 그 연구, 지금은 무엇하고 있나?' 같은 기사를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현재 과학기술자의 위상이 낮아서 불만이라면 지난 날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린 민주화 투쟁에서 과학기술자들은 무엇을 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지금 남발해대는 장밋빛 환상과 세계 최초라는 부끄러운 주장들을 보면 미래에도 과학 기술자의 위상은 그리 좋을 것 같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한상근ㆍ한국과학기술원 (KAIST)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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