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불신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공권력의 집행이 형평성을 잃기 때문이다.엄정하고 추상같아야 할 공권력이 시쳇말로 고무줄 잣대가 될 때 대정부 불신은 계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배해진다.
특히 세간에 무성한 지도층에 대한 비리의혹을 의도적으로 덮으려 하거나 묵살하려 할 때 그 사회는 공권력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이 남게 된다. 보편성을 잃은 이런 공권력이 영(令)이 설 리도 만무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일섭 전 국방차관 집의 도난 피해 사건은 당국의 석연치 않은 일 처리로 많은 오해와 억측을 낳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인 문씨 개인에게는 물론 공권력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럼에도 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 모양, 이 사건에 대해 가급적 언급을 회피하려고 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선 문씨는 도난당한 1만6,000여 달러가 해외출장에서 쓰고 남은 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 자금출처와 관련, 아랫사람들이 출장비에 보태라고 몇 푼씩 모아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씨가 차관 재직시에는 단 한 차례도 해외출장이 없었다. 대신 방위사업실장과 획득실장이었던 98년 11월~2000년 6월 사이에 6차례 출장을 간 것으로 판명됐다. 따라서 무기구매 책임자의 해외출장에 얽힌 의혹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방부와 사정 당국은 진상규명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문씨에 대해 만약 조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검찰이나 경찰이 나서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표정이다. 이런 사이에 의혹은 눈 덩어리처럼 부풀려지고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과거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당국의 투명치 못한 처신으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국은 이 같은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피해자 문씨 주장이 1차적으로 중요한 사안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문씨 진술의 진위에 대한 검증은 당국의 몫이다.
문씨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는데도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정부의 불신만 자초하는 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