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을 하고 남은 세계(歲計)잉여금의 사용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있다.민주당은 최근 관련 법을 고쳐 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 상환 등에만 쓸 수 있는 세계잉여금을 추경예산 재원으로 사용, 경기부양과 실업대책 등에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권이 이를 통해 내년 대선 등을 겨냥한 선심정책을 펴려 한다며 의혹을 시선을 보내고 있다.
[찬성] 국가 채무 외국도 일반적
순세계잉여금은 세입이 예산보다 초과징수되거나 지출이 당초 세출예산보다 적게 집행되어 불용액이 발생한 경우 초과세입과 세출불용액을 더한 것을 말하는데, 작년에 4조 555억원의 세계잉여금이 발생했다.
최근 그 용처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세계잉여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국가경제 발전에 득이 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를 충분히 생각하고 재정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야당 등 일부에서는 정부가 쓰고 남은 돈을 국가채무를 갚는데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그래도 남는 재원이 있다면 그때 가서 추가경정 예산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영원히 추경을 편성하지 말라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국가채무는 어느 나라에서나 또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에도 국가채무가 65조 6,000억원에 이르렀고 이는 전년도의 세계잉여금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국가재정에서 일반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를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사용하고 남는 재원으로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또 언제나 추경편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상환에 사용한다는 것은 예산회계법이나 국가재정 운용의 대원칙이나,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의 삶을 개선한다는 더욱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금년은 대외경제여건의 악화로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국내경제가 아직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6월에야 그 규모가 정확히 나올 것이지만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보전해 주어야 하고, 지방교부세법 등 관련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자치단체에 교부해 주어야 할 재원도 3조 6,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시키며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완화시키는 등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재원은 추경을 편성해서 적기에 확충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증대와 궁극적으로는 국가채무 감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작년에는 재정에 상당한 여유가 있어 국채발행을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했다.
27조7,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15조1,000억원 밖에 발행하지 않았다.
재정운용상 남는 돈을 모두 추경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채상환 또는 발행유예에 충당하고 금년으로 넘어온 일부 잉여금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가재정을 운용함에 있어서는 국가채무나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미시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국가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거시적 접근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강운태·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반대] 멕시코·일본 재정서 보듯
가장이 진 빚 때문에 살림살이가 어려워 진 한 가정을 생각해 보자. 가장의 벌이도 예전과 같지 않은데 빚까지 지게 된 이 가정은 이제 이자 갚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집안 살림은 말이 아니고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처럼 한번 어려워 진 살림을 예전으로 되돌리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수입이 지출보다 대출이자 만큼은 많아야 하고 장차 원금까지 갚으려면 수입이 지출보다 그만큼 많아야 한다.
이럴 때는 결국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벌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라살림도 다를 바 없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구조조정에, 실업대책에 그리고 빈곤대책에 쏟아부은 돈이 그동안 세금으로 거둔 것 보다 더 많았다.
이는 나라 살림에서 상당한 규모의 적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 적자를 국채발행으로 메우고 매년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더구나 금융권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발행한 채권을 정부가 보증하고 이자를 재정에서 지급하도록 하였다. 결국 정부가 지고 있는 직접적 그리고 간접적 빚은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다행히 기대 이상의 경기상승으로 2000년은 세수가 증대하여 재정지출을 상회하게 됐다. 이에 따라 통합재정기준으로 흑자가 발생하였고 아울러 세계잉여금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를 추가경정예산의 재원으로 사용하려 한다. 이는 앞서 거론된 가정에서 한달 수입이 오랜만에 지출보다 커져서 이를 그동안 억눌려 왔던 지출의 재원으로 쓰려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외환위기를 네차례나 겪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국가나 일본이 그러하였듯 나라살림에 적자가 시작되고 나라 빚이 쌓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우리의 나라살림에 또 하나의 큰 문제는 현 정부 출범이후 해마다 추경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98년 예산은 외환위기 때문에 불가피하였다 하더라도 그 후의 추경은 정부의 무계획성과 무책임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제있고 투명하고 책임감있는 재정운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적 왜곡을 철저히 차단하여 세계잉여금은 빚 갚는데 우선 써야 한다.
추경편성 자체도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어렵사리 만들어 낸 세계잉여금을 추경 재원으로 쓴다는 발상은 다분히 무책임하다.
2003년에 상환해야 할 국공채의 원리금이 40조원이나 되고 각종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위기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재정운용에 있어서의 규율을 확립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재정개혁관련 3대 법안인 국가채무감축법, 기금관리기본법, 예산회계법 모두 이 재정 규율을 확립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예결위 상설화를 입법화한 지 일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우리 국회는 나라살림을 제대로 꾸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걱정이 앞설 따름이다.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잉여금이란
세계잉여금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정부의 연간 총세입에서 총지출을 뺀 액수이다. 정부는 다음해의 세입규모를 예상하고 그 범위에서 새해 예산을 짜는 데 해당연도에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힐 경우 세계잉여금이 발생한다.
경기가 좋을 수록 세계잉여금의 규모는 커진다. 반대로 경기가 갑자기 나빠져 세수가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에는 예정했던 사업의 시행을 다음해로 미루는 등 징수한 세금의 범위 안에서 사업을 한다.
최근 세계잉여금 발생액을 보면 1996년 1조7,950억원, 97년 1조9,970억원, 98년 1조4,153억원, 99년 3조7,707억원, 2000년 5조1,377억원이다.
99년에는 정부 각 부처가 당초 계획했던 사업을 시행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불용액이 많아서, 2000년에는 세금이 많이 걷혀 세계잉여금이 많았다.
이렇게 발생한 세계잉여금중 국회 동의를 거쳐 다음해로 이월하는 금액을 뺀 것을 순잉여금이라 한다.
순잉여금만 놓고 보면 96년이 7,187억원, 97년 4,147억원, 98년 6,202억원, 99년 7,623억원, 2000년 4조555억원이다.
최근 민주당이 추경예산에 사용하겠다는 세계잉여금은 엄밀하게 보면 순잉여금이다. 관련 법은 이렇게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 상환, 국가 배상법에 따른 배상금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세계잉여금은 추가경정예산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채무 상환, 지방교부세 정산에 우선 사용하여야 한다'고 수정, 세계잉여금을 추경예산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사실을 이유로 든다. 지난해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채무만 119조7,000억원, 국민 1인당 260만원에 이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앞으로도 국가채무가 해마다 10% 이상 증가, 2004년에는 직접채무만 15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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