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잘 안다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할까. 기존 장르와 관습을 따르자니 진부하게 느껴져 싫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열심히 쫓아 다녔는데 자신도 모르게 기존 영화의 냄새가 나서 사람들로부터 "모자이크" 란 소리를 듣기 쉽고.사실 '공동경비구역 JSA' 전까지만 해도 박찬욱 감독도 그랬다. 그의 B급영화 '삼인조'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바로 이무영씨다.
그는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다.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도 그가 썼다. 미국 뉴저지 주립대를 졸업한 이 '시네마 키드' 는 유능한 방송인이자, 팝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영화도 알고, 음악도 알고, 대중의 심리도 아는, 감독으로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그가 각본, 감독, 음악을 맡은 영화 '휴머니스트'(12일 개봉)는 다른 신인 감독의 데뷔작과 달리 기대감을 크게 갖게 한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재주는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 영화는 모든 것을 뒤집기로 작정했다. 제목부터 지독한 역설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가치를 비꼬며 조롱한다.
어처구니 없는 결말을 통해 휴머니즘을 배반하고, 인간관계를 통해 천민자본주의의 지배구조를 희화하고, 군복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부잣집 아들인 건달 마태오(안재모)와 그의 어릴 때 친구인 아메바(박상면), 유글레나(강성진)라는 이름에서 그들이 벌이는 마태오 아버지 납치극까지, 또한 기막힌 우연과 해프닝에서 수녀, 탈영병, 경관등 주변인물의 캐릭터까지.
감독은 능숙하게 영화를 끌고 가면서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연출방식을 자랑한다.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상황전개와 대사, 이를테면 깨끗한 것만 찾는 마태오가 "깔끔 떠는 것이 질색"이라는 탈영병을 만나고, 원장 수녀가 오히려 지독한 사투리를 쓰는 아이러니와 어이없는 반전들이 영화를 엽기코미디로 끌고 간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재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날카로운 페이소스나 풍자가 아니라 장난끼이다.
재주를 과시라도 하듯 온갖 장르를 뒤섞은 치밀한 계산이 엿보이지만 가슴을 찌르는 날카로움이나 여운이 남지 않는다.
그런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쾌할 것이다. 그러나 싫은 사람들은 '휴머니스트' 에서 멀게는 타란티노 영화, 가까이는 '신장개업' '자카르타'까지 비슷한 류의 영화 장면들을 쉽게 찾아내며 불쾌해 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영화는 비난하거나, 열광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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