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4일 유고슬라비아의 정치가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베오그라드에서 작고했다. 향년 88세.크로아티아의 금속 노동자였던 티토는 제1차세계 대전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소집돼 러시아군의 포로가 된 뒤 러시아 혁명에 투신했고, 그 뒤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와 스페인에서 전장(戰場)과 감옥을 오가며 혁명 운동에 진력했다.
그는 제2차세계 대전 중에 독일과 이탈리아 점령군에 맞선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을 이끌고 조국을 해방시킨 뒤 정권을 장악했고, 죽을 때까지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노선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48년 수정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코민포름에서 제명됐지만, 티토는 자주관리제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 사회주의를 추진하며 비동맹중립 외교 정책을 굳게 지켰다.
티토라는 이름은 여러 문화 집단이 공존하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통일과 단합의 상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 태어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계승하며 티토가 세운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의 여섯 개 공화국과 세르비아 안의 자치주 둘 곧 코소보와 보이보디나를 포함해 여덟 개의 정치 행정 단위로 이뤄져 있었다.
91년 6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이래 유고슬라비아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거치며 순식간에 해체됐다.
이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이 이름뿐인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상징이었던 티토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유고인들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그를 더 이상 유고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몬테네그로에서도 독립의 기운이 커지고 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허울 조차 그 끝머리가 멀지 않은 듯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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