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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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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입력
2001.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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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은 책에 미친 사람을 서치(書癡)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글을 읽고 책을 들추는 일을 지나치게 즐기는 이를 서음(書淫)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음란한 지경에 이르도록 책을 탐한다.그러나 그 음란은 아름답다.19세기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는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노래했다.

시인 남진우는 "내가 읽은 것은 모두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라고 말했다.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 삶은 한 권의 책이고,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서양사학자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가 쓴 에세이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한 애서가의 무한한 책 예찬론, 책에 바치는 헌사이다.

"백추(白秋)의 여인이 옷장을 뒤지며 그녀 앞에 다가선 새 계절을 단장하듯, 나는 책장을 뒤지면서 봄을 맞을 채비를 한다"고 글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서음'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이다 게임이다 영화다 TV다, 범람하는 정보와 오락의 홍수에서 책 아닌 즐길거리가 널려 있어, 젊은이의 손에서 점점 책이 멀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노학자는 강요하지 않는 어투로 책과 관련된 자신의 지적 편력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듯 들려주며, 독자가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유럽 지성사가 전공인 그가 인류문화사의 갈피에서 찾아낸 책의 역사와 일화, 책을 사랑한 이들의 삶, 책을 읽는 즐거움이 페이지마다 샘 솟는다.

책이 다른 모든 문화적 매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 책(저자)과 독자가 세계의 유일한 단독자로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책을 손에 든 사람에게는 책이 곧 세계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영혼과 독자의 영혼 외에 다른 세계는 어느덧 자취가 희미해지고 마침내 사라져버린다.

"술은 대작이 좋고 극장에서는 동반자의 존재가 더욱 흥을 돋우지만, 책방은 혼자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우연히 책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외면하는 것이 예의인성 싶다. 책과 만나는 그의 즐거운 '놀이'를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유인'으로서 책 읽는 사람의 존재를 일깨운다.

유학시절 독일 하이델베르크 광장 뒷골목의 고서점을 11시 개점을 기다려 들어가서 5시 폐점 때까지 꼬박 책을 읽고 보낸 일, 서울 원남동에 있던 책방에서 학생 신분으로는 큰돈을 주고 구입한 1804년판 플라톤 저작집 5권이 출판사에 기록될 정도의 희귀본임을 알고 스스로 놀랐던 일, 6ㆍ25 때 환도한 후 옛 서울고교 맞은편 서점에서 샀던 릴케 시집이 박용철(朴龍喆) 시인의 소장본이었음을 알게 된 일 등 '책 사냥'과 관련된 일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남독과 탐독의 수십년 지적 편력에서 그에게 책은 '정념과 세계인식의 타작(打作)의 장'이었다.

인류 최초의 문필가는 아담이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서재에는 '성서' 단 한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외에도 시호가 문헌(文獻)이었던 조선시대의 애서가 등 동서고금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장서광과 독서가들의 이야기, 세계적 도서관들의 이야기, 금서를 읽는 즐거움까지 책에 대한 일화가 열거된다.

이 교수가 소개하는 가장 아름다운 책 네 가지, 윌리엄 모리스의 '샤갈의 그림 성서' 등에 관한 이야기와 책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예술작품'으로서의 책의 아름다움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이 책도 미려한 장정과 섬세한 편집, 생생한 컬러 도판들로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12세기 신학자 생 빅토르 위그의 말처럼 "한가(閑暇)에 자신을 바쳐" 문자의 독배를 마시고, 텍스트에 스스로 유폐되는 즐거움을 맛볼 만하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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