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불안 속에 수출급감'이라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꺼져가는 수출을 살리자니 이미 5%선을 넘어선 물가가 우려되고, 물가를 안정시키자니 마이너스 9%까지 하락한 수출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가 발목을 잡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금리, 환율 등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이 '양날의 칼'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중고민
정부의 고민은 두 단계로 요약된다. 우선 '물가안정과 경기부양(수출진작)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아직까지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상황이며, 재경부 각 부서별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물가보다는 경기를 진작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연말 물가목표(3% 후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출과 경기를 살리겠다는 방침이 정해진 뒤에도 또다른 고민이 남아있다. 내부적으로는 금리부문에, 외부로는 환율부문에 '유동성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정부 처방이 효과를 발휘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금리를 내려도 '유동성 함정' 때문에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지 않으며, 환율을 내려도 비슷한 논리로 수출이 늘어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시중에 자금이 모자라서 경기가 위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를 내리면 일부 부유층이 주고객인 자동차나 골프채 소비는 늘어나겠지만 일반 근로자나 연금 소득자는 구매력이 감소, 오히려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1,200원대이던 환율이 10%나 하락해 1,300원대까지 내려왔는데도 4월 수출이 9% 줄었다는 것은 전통적 처방으로는 수출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막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 미세한 조정으로 흐르는 정부
일단 정부는 6월말까지는 경제 운용의 큰 틀을 바꾸지 않은 채,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금융ㆍ세제지원 등 일부 필요한 부분에 대한 미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관계자는 "무역수지가 흑자를 내고 있는 이상 단기적으로는 수출의 절대규모가 문제되지는 않지만 1ㆍ4분기중 설비투자가 6.3%나 줄어든 것은 성장엔진이 식을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수출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국내 법인의 현지금융 확대, 무역업자의 DA한도 확대, 종합상사의 부채비율 완화 등은 정치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허용되기 힘들 전망이다.
한편 민간 연구소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가보다는 경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장은 "하반기에는 물가를 신축적으로 운용하면서 경기가 급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심재웅 연구원도 "통화정책 기조 완화 등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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