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에 대한 준비는 면밀하게, 그러나 입장 표명은 최대한 신중하게.'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추진 발표에 대한 우리 당국의 반응은 한마디로 신중론이다.정부 관계자들은 이날 말을 극도로 자제했다. 외교통상부의 MD 관련 부서 직원들에게는 함구령까지 내려졌다.
그만큼 미국의 MD 추진이 갖는 세계 전략적, 외교적 함의가 복잡하다는 얘기다. 특히 2월 한러 공동선언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보존ㆍ강화' 문구를 둘러싸고 홍역을 치른 외교부는 미국의 정책 선언에 대한 섣부른 반응이 '제2의 국가미사일방어(NMD)' 파문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실제로 3월 이정빈(李廷彬) 전 장관의 입장 표명과 한미 정상회담 공동발표문 외에 달리 말할 내용도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세계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MD를 추진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동맹국 및 관련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를 바란다는 게 현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이해를 구한 데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모호성의 전략'을 채택하는 상황 논리를 미측에서 찾고 있다. MD 추진 계획이 나왔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MD의 기술력 확보도 훗날의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을 뿐, 정물화가 될지 인물화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해석이 알려지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부는 당분간 관망할 태세다. MD 추진에 대한 미국내의 동향과 국제 역학관계를 주시할 단계라는 것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도 'MD 동참'요청보다는 '동맹국과의 협의'라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차원으로 이해한다.
정부는 무엇보다 미국의 MD 체제 강행이 남북 관계 및 동북아 정세에 미칠 파장에 신경을 쓰고 있다.
MD 구축의 명분을 북한 등 깡패국가의 위협에서 찾고 있어 가뜩이나 경색된 북미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또 중ㆍ러ㆍ북한 축과 미ㆍ일 축의 대립은 동북아의 긴장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전략적 이익을 찾기 위한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된다는 게 당국자들의 지적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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