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서울 서대문구)씨는 둘째 딸(7)이 동물원을 좋아하지만, 어린이날처럼 사람이 붐비는 때는 놀이공원 나들이는 엄두도 못 낸다. 여느 아이들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딸아이는 자폐아다. 자동차 소리도 엄청난 소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유치원에 갈 때도 가족 중 누군가는 따라가야 한다.초등학교 교사 최모(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네 살배기 아들 키우기가 무척 힘들다.
"남들이 봐도 정말 잘 생긴 아들이 자폐 성향이 있어요. 혼자 놀아도 외로운 걸 못 느끼는지 엄마인 내가 같이 놀자고 해도 반응이 없죠."
최씨의 아들은 전반적 발달장애. 최씨는 올해 1년간 휴직하고 본격적으로 아들의 치료 교육에 나섰다.
이들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때가 되면 걸음마를 떼고 말을 시작하는 평범한 아이들이 부럽다. 자폐나 정신지체 등 장애를 겪는 발달장애 아동은 출생 아동의 3~5%. 또 넓은 의미의 발달장애 범주에 포함되는 정서장애,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 등 부적응 아동은 8~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육영회 치료교육연구소 박랑규 소장은 "자폐나 정신지체처럼 생활에서 크게 곤란을 겪는 장애뿐 아니라 정서장애, 주의력 결핍처럼 부적응 아동도 발달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 및 교육이 필요하다"며 "컴퓨터 중독처럼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유형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눈물도 많이 흘린다. 김씨는 "부모들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점점 나아지겠지'라고 희망을 품어본다"며 "발달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기약 없는 장기전을 치르다 보면 부모들이 지쳐간다"고 털어놓았다.
앞에 말한 김씨의 딸은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늦춘 상태이다. 유치원도 문제없이 잘 다녔지만, 김씨는 좀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수학교보다는 일반학교가 보통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특수학교로 옮기는 경우도 많이 보았어요." 사실 딸아이도 유치원에 입학할 때 몇 군데서 거절 당한 경험이 있다.
제대로 교육받기 힘든 현실은 더 큰 부담이다.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세 돌 전후가 진단과 교육이 시작돼야 하는 시기. 종합병원 소아정신과, 복지관, 조기특수교육전문기관 등 발달장애 어린이를 진단하고 치료, 교육할 수 있는 기관은 대개 몇 달씩 희망자가 밀려있는 형편이어서 적기를 놓치기 일쑤이다. 특수학교 유치반은 언제나 들어갈 수 있지만 교사 한 명이 10명 가량의 아동을 돌보는 등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꺼리고, 복지관은 비용이 저렴하지만 1~2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기자가 많다.
아들이 올 1월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단받고 3월부터 이화여대 발달장애아동센터에서 교육받고 있는 최씨. 특수교육기관에 매일 전화로 빈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열성을 보였기에 가능했다. 최씨는 "발달장애 아동이 진단받고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인터넷 검색 후 직접 찾아가 본 한 사설교육기관은 시설이 너무나도 열악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은 "교육비를 감당하기 벅차다"며 "국가가 절반만 보조해 줘도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시간당 몇 만 원씩 하는 교육비는 웬만한 가정에서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장애인 등록을 해도 교육비 지원 같은 혜택은 전혀 없고,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에 대한 지원도 없기 때문이다. 최씨의 경우 한달 교육비가 80만원. 조기교실이 한 학기에 195만원이고 작업치료가 30분에 3만원이다.
신체발달과 감각 협응에 좋은 수영을 배우려고 해도 특수체육을 전공한 강사에게 개인교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월 40만원 정도는 들어간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직하는 등 수입은 줄고 경제적 부담은 늘어나는 게 발달장애아동 가정의 현실이다. 부모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으로 교육을 시키면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발달장애아동 어머니들의 모임인 기쁨터(www.joyplace.org)같은 커뮤니티는 아직 드물다.
김씨 같은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대부분 특수학교보다는 일반학교를 선호한다. '보통 아이들과 섞여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 크다. "딸아이가 유치원 친구들에게 말하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보통 아이들보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니까 기다려주세요.
문향란 기자 iami@hk.co.kr
■통합프로그램 있는곳 택해야...
아이가 유난히 '늦된' 경우라면 대개 교육이 필요하다. 이화여대 발달장애아동센터 김아영 소장은 조기특수교육이 필요한 대상으로
→ 전반적으로 발달이 지연된 아동
→ 정서, 인지, 행동에 문제를 지닌 아동
→ 유치원, 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운 아동
→ 혼자 놀거나 또래 또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동
→ 말더듬 등 언어 발달이 더딘 아동
→ 한 가지 활동을 오래 못하고 주의가 산만한 아동
→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특정과목을 어려워하는 아동
→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아동 등을 꼽는다.
그러나 "조기 특수교육 및 치료기관이 부족한 상태이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진단 및 치료교육은 유아특수학교, 특수학교 유치부, 복지관, 사설조기교육기관, 병의원 등에서 이루어진다. 전국적으로 600여 곳이 있지만, 이중 절반 가량은 부모가 전액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사설기관이다.
김 소장은 심리 및 언어, 감각통합 치료 등 통합적인 교육 및 치료가 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는 기관을 선택할 것을 권했다. 교사들의 질도 중요한 문제. 발달심리전문가 또는 발달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 또는 임상심리사 등 자격증을 지닌 교사는 믿을 만하다. 전문교육기관 현황 및 연락처는 장애아동의료정보사이트 디디차일드(www.ddchild.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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